[간첩사건 증거위조 파문] 남재준 원장 거취 문제 與 계파 갈등으로 비화

입력 2014-03-13 01:31


국가정보원의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이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 갈등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친이(친이명박)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은 남재준(사진) 국정원장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친박(친박근혜) 주류를 주축으로 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검찰 수사가 먼저”라며 문책론에 제동을 걸었다.

남 원장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조성된 여야 대립 구도에 여권 내분까지 겹치는 형국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물론 새누리당 비주류도 남 원장 경질 요구에 가세하면서 친박 주류가 포위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광역단체장 경선 후보 중에선 처음으로 정몽준 의원이 남 원장 경질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권 내부에서 남 원장 경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될 경우 계파 간 정면충돌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12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국정원의 철저한 쇄신을 위해서는 남 원장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원이 증거 위조 사실을 알았다면 묵인 내지 은폐한 것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이인 이재오·정병국·김용태 의원에 이어 심 최고위원까지 경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 최초로 남 원장 경질을 촉구했던 이재오 의원은 거듭 사퇴를 요구했다. 이 의원은 “원인 제공을 국정원이 했다”면서 “국정원장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고, 자리를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주류들은 남 원장 거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지 못할 경우 지방선거 필패라는 논리를 앞세워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방선거 후보자들과 당권 도전자들의 정치적 셈법은 복잡하다. 남 원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입장에 기울어 있지만 당내 경선과 전당대회에 참여하는 새누리당 당원들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어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원장 경질과 관련해 “오래 전 회의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남 원장이 지난해 6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이어 증거 위조 의혹에 대해서도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만큼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즉각적인 경질 요구를 거부하고 ‘선(先) 검찰 수사, 후(後) 문책론’을 꺼내들며 남 원장 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경질 요구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황우여 대표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문책론을 펴기보다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린 후 그 책임 소재에 따라 엄격히 책임을 논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게 우리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인제 의원은 “미국 정보기관의 ‘스노든 사태’를 보면 미국 야당은 정쟁으로 삼지 않았고, 미국 정보기관 책임자도 교체된 일도 없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물을 만난 듯 총공세를 이어갔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지체 없이 남 원장을 해임하고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며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국정원장 해임 사유는 넘친다”고 주장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