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시청률의 제왕
입력 2014-03-13 01:36
1927년 미국에서 라디오 청취율 조사가 처음 실시됐다. ‘베이킹 파우더’ 광고주가 제품의 광고효과를 알아보려는 차원이었다. 2년 뒤엔 최초로 전국조사가 이뤄졌고 TV까지 시청률 조사가 확대됐다. 1936년 미 MIT연구팀이 기록장치를 개발하자 닐슨사가 특허를 사들였다. 그리고 패널가정마다 TV에 ‘오디미터’란 기록장치를 부착해 실시간 시청률 조사를 했다. 이후 닐슨은 세계 최대 시청률 조사기관으로 급성장했다.
1980년 한국에 설립된 닐슨코리아는 1992년에 국내 처음 도입된 ‘피플미터’로 시청률 조사를 했다. 1998년에는 또 다른 시청률 조사기관 TNmS가 출범했다. 2개의 외국계 시청률 조사기관들이 지금 방송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쥐락펴락한다.
매일 아침 7시. 방송사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시청률이 높으면 환호하지만 저조하면 어깨들이 처진다. 시청률이 PD와 작가들을 웃기고 울린다. 시청률 50%가 넘는 ‘국민드라마’는 아니더라도 20% 이상이면 대박이다. 반면 0.1∼0.4%대의 소위 ‘애국가 시청률’도 적지 않다. 어떤 PD와 작가들은 아예 실시간 시청률을 체크하며 즉석에서 대본수정을 하기도 한다.
KBS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 ‘박대표’는 시청률에 목매는 제작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막장이라고 비난받는 프로그램일수록 시청률은 더 오른다. 막장을 비난하는 시청자들이 막장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욕망을 더 느낀다고 한다. PD와 작가, 시청자 모두 막장의 유혹을 떨치긴 어려운 모양이다.
주말 리얼리티 예능의 시청률 경쟁도 극심하다. SBS의 리얼리티 예능 ‘짝’이 여성출연자 자살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반전을 거듭하며 극적 효과를 내려는 ‘막장의 연출본능’이 낳은 불상사였다. 최근에는 침실까지 엿보는 관음성 리얼 예능들이 매주 극한 경쟁을 벌인다. 편당 2억∼3억 원 드는 사극 대신 5000만∼8000만원이면 만드는 드라마나 리얼 예능이 방송사로선 훨씬 더 경제적이다. 시청자들도 이런 드라마와 리얼 예능에 더 열광한다.
시청률은 광고수익과 직결된다. 시청률이 높으면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에 최대 24개의 광고가 붙는다. ‘시청률 만능주의’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다. 막장이든 뭐든 높은 시청률의 프로그램은 PD와 작가는 물론 방송사에 효자 노릇을 한다. 막장을 연출하는 방송사들의 ‘박대표’와 ‘비판하면서도 더 즐겨 보는’ 시청자들, 어느 쪽이 ‘시청률의 제왕’일까.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