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증거위조 수사] 뚝심의 남재준 ‘위조 고비’ 넘을까
입력 2014-03-12 02:33
여권 내부에서 남재준(사진) 국가정보원장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국정원장으로 취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남 원장이지만 이번 국정원 증거 위조 의혹의 파고는 쉽게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1일 “남 원장이 버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군인정신이 투철한 그가 스스로 책임지고 사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청와대가 여론에 떠밀려 경질하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남 원장을 경질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의 첫 국정원장인 남 원장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국정원 ‘정치 글’ 논란 등 정치적 사선(死線)들을 넘었다. 남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국정원 개혁 방안이 논의되던 지난해 12월 북한 장성택 실각과 처형이라는 메가톤급 정보를 입수하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거 위조 의혹이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확산될 경우 여권은 초접전 지역인 수도권에서 재앙과 같은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남 원장 경질 등 국면전환용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재오 의원에 이어 김용태 의원이 공개적으로 남 원장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병국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정원의 증거 조작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새누리당이 남 원장의 경질을 강하게 요구하면 당·청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
사건의 성격도 다르다. 국정원 정치 글 논란은 전 정부 일이었고,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안보 이슈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증거 위조 의혹은 국정원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소행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남 원장 경질이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남 원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한 신뢰 때문에 경질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대공 분야 고위 관계자를 경질하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수 있다. 남 원장의 국정원에 박 대통령이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남 원장은 이석기 의원의 지하혁명조직(RO) 사건을 무난히 처리했고, 국정원 내부 개혁에도 주력하고 있다.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 1월 현지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던 한석우 리비아 트리폴리 무역관장 구출 작전도 사실은 국정원이 주도했다”면서 “현재로선 남 원장 경질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