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착한 사회를 향해] 기적의 ‘나눔’ 릴레이 담양엔 행복 바이러스
입력 2014-03-12 02:33
2009년 7월 30일 오전 10시20분쯤 전남 담양군청 행정과에 40대 남성이 10㎏짜리 토마토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직원들은 서로 ‘한여름 낮에 웬 토마토 상자?’라는 의아심을 갖고 상자를 뜯어본 순간 모두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과 1만원권의 뭉치 다발로 2억원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돈다발과 함께 들어 있던 A4 용지에는 큰 글씨로 ‘골목길에 등불이 되고파. 2009. 7. 29 군민’이라고 쓰여 있었다.
직원들이 상자를 들고 온 40대 남성을 급히 쫓아가 물어보니 “조금 전 군청 정문 앞에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상자를 행정과에 전달해 달라고 해서 전해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기부금 상자는 3년 연속 이어졌다. 2010년 2월 4일 오전 11시10분, 200만원이 담긴 자양강장제 상자가 군에 전달됐다. 이 상자 안에도 ‘심지가 짧아 더 밝은 쌍등불의 지름이 되기를…’이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그 다음해인 2011년 3월 9일 오후 3시에는 ‘담양장학회 첫 단추로 사용해 주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1억원이 담긴 양주 상자가 보내져 왔다. 이 같은 소식은 순식간에 군 전체에 퍼져 릴레이 기부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조의금 일부를 맡기기도 하고, 대나무축제가 끝나면 수익금을 내놓은 업체도 있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5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수익금의 일부를 내놓는 식당도 늘었다. 깻잎 판 돈을 수줍게 내놓는 주민도 있었다.
등불장학회의 후원회까지 구성됐으며 5000원, 1만원씩 매월 자동이체 건수도 88건(66만8000원)이다. 마을별로 결성된 축구동호회 5곳도 매년 100만원씩 기탁하고 있다. 정경옥 담양군 평생교육 담당 계장은 “최근에는 100만∼200만원을 방문 기탁하는 지역민이 1주일에 2∼3명은 있다”고 말했다.
제법 큰돈도 기탁됐다. 지난해 5월 30일에는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부산으로 출향해 제조업으로 성공한 고(故) 최두호씨 가족이 3억원을 내놨다. 이런 식으로 지난 3년간 673명의 기탁자들이 십시일반으로 7억6300만원을 내놓았다. 2011년 출연금 등을 포함해 57억원이었던 장학금은 현재 이자까지 붙어 66억원으로 불어났다.
군은 1993년 군비 2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담양장학회에 ‘등불장학회’와 ‘최두호장학금’을 두고 기탁자의 희망에 따라 지역의 의용소방대 자녀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앞으로 매년 장학금이 지급된다. 그동안 204명이 3억9900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봤다.
담양=글·사진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