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책 펴낸 한병철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 “투명성 강요 지나쳐… 서로 감시하는 통제사회 돼”
입력 2014-03-12 01:37
2012년 저서 ‘피로사회’로 자기 착취에 빠진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고발해 파장을 일으켰던 한병철(사진)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가 새 책 ‘투명사회’(문학과지성사)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투명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시해 논란이 됐던 책 ‘투명사회’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생각을 담은 ‘무리 속에서-디지털의 풍경들’을 번역해 한 권으로 묶었다.
한 교수는 11일 서울 신문로 2가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도, 문학도, 의료도, 모든 삶의 영역이 투명해져야 신임 받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투명성을 중시하면서 투명성이 곧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한다는 ‘투명에 대한 강요’ 때문에 오히려 획일화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남들과 다른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됐고, 권력이나 정보기관의 감시 이전에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유권자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이나 ‘구경꾼’이 돼서 정치인을 개인 스캔들의 대상으로 보려고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독일 정치인들은 정치적 내용을 실현하는 것을 ‘납품한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정치인은 납품업자, 유권자는 소비자로서 납품받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나쁘다며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강요하는 권력’에서 ‘유혹하는 권력’의 시대가 됐다고 진단했다. 한 교수는 “자기 삶에 대해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 스스로를 드러내게끔 한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고문할 때 쓰는 기구나 고해성사 할 때 앉는 의자와 비슷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자신은 스마트폰은 물론 유선전화도 쓰지 않고 이메일로만 소통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나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지만 모두 통제하는 기구이죠. 안 쓰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