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컨트리 좌식 스키 한국 대표 서보라미 “나를 일으킨 건 어머니의 힘”

입력 2014-03-12 02:32


2004년 4월 어느 날 무용수를 꿈꾸던 평범한 여고 3학년생이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눈을 떴을 때 병원 응급실이었어요. 수술을 받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더군요.” 걷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매일 극단적인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죽음의 도구로 보였다.

“나 하나 죽으면 끝이지만 엄마한테 더 이상 힘든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좌식 스키에 나서는 서보라미(28·하이원스포츠단)의 고백이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은 어머니 이희자씨였다.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는 내색도 하지 않고 병실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서보라미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자살을 생각하며 휠체어를 타고 병원 계단으로 간 서보라미는 거기서 쭈그린 채 곤히 자고 있는 어머니를 봤다. 서보라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마음을 다잡고 재활에 매달렸다. 2006년 재활을 위해 좌식 스키를 배운 서보라미는 장애인스키협회의 권유로 전문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한계를 뛰어넘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스키를 탄다”고 말했다.

좌식 스키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쉽게 넘어지는 종목이다. 그는 넘어질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났다. 힘든 훈련 끝에 마침내 2009년 장애인 동계체전에서 우승하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서보라미는 동계 패럴림픽에 두 차례 연속으로 출전했고, 소치 패럴림픽에선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번 소치 패럴림픽에서 1㎞, 5㎞ 종목에 나서지만 메달 획득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이원스포츠단 관계자는 “서보라미는 꾸준히 성적이 좋아지고 있어 평창에선 5∼6위권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보라미는 장애인이라고 주눅이 드는 법이 없고 오히려 비장애인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9년 처음 출전한 국제무대인 월드컵에서 남몰래 받은 충격 때문 생활 태도를 바꿨다. 당시 뷔페식 선수 식당에서 그는 남의 도움을 기다리며 식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장애인 선수들은 음식을 가지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서보라미는 “도움을 받을 줄만 아는 내 모습에 창피했다”고 털어놨다. 서보라미는 그때의 경험처럼 자신도 다른 장애인 선수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