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영어(공부)놀이 또…” 아이가 먼저 졸라
입력 2014-03-12 02:31
“잇츠 언 애니멀(It’s an animal).” “….” “롱 노우즈(Long nose).” “하하, 엘리펀트(elephant)!” “굿(Good)! 호호.”
꽃샘바람이 매섭던 지난 6일 오후 조상은(41·여·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씨 집 거실은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조씨는 아들 이호중(10·초등 3)군과 영어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호중이는 머리에 ‘찍찍이’가 붙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명함만 한 종이들이 널려 있었다. 호중이가 종이를 하나 들어 그 찍찍이에 붙이니 영어 단어와 그림이 나타났다. 조씨가 그것을 보고 영어로 간단한 문장이나 단어로 힌트를 주었다. 엄마의 힌트를 듣고 호중이가 우리말로 맞히면 초콜릿 1개, 영어로 맞히면 초콜릿 2개를 상으로 준단다. 코끼리를 영어로 맞춘 호중이는 초콜릿 2개를 받고는 만세를 불렀다.
호중이에게 영어를 언제부터 배웠느냐고 묻자 “일곱 살 때 엄마가 하는 영어 교실을 따라가서”라고 답했다. 올해부터 학교에서도 영어를 배운다는 호중이는 “영어가 재미있다”면서 초콜릿을 먹었다. 조씨는 “실은 호중이는 우리말을 잘하게 된 네 살 때부터 영어를 배웠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조금 전처럼 엄마와 놀면서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조씨는 조상은영어컨설팅 대표로 ‘우리 아이 기 살리는 글로벌 영어’ ‘하루 5분 영어놀이의 힘’ 등 어린이 영어 교육책을 출간했다. 엄마들에게는 ‘대사관맘’으로 더 유명하다. 10년간 네덜란드 대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영어공부법을 강의하면서 얻은 별명이다.
이쯤에서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입 삐죽일 부모들이 적지 않겠다. “엄마가 영어깨나 하니까 아이들과 놀면서 영어를 가르치지 !” 조씨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손을 내저었다.
“영어놀이는 단순할수록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니 완전 초보 영어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영어놀이는 진행을 전부 영어로 할 필요도 없다. 우리말로 하면서 짧은 문장이나 단어만 영어로 하면 된다. 단,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 효과가 높다. 그는 “엄마의 영어가 서투르면 아이는 더 재미있어한다”면서 “오히려 영어를 잘해서 자꾸 설명해주고 가르치려는 엄마랑 하는 게임은 아이들이 재미없어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일찌감치 영어유치원과 학원에 보내 엄마보다 영어를 잘한다면 아이가 문제를 내고 엄마가 맞히는 것으로 역할을 바꿔도 좋다.
“게임을 하면 승부욕이 발동해서 아이들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요. 아주 푹 빠져들죠.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상품을 걸면 효과는 더 좋습니다.”
간혹 발음 때문에 아이들 앞에선 영어 단어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부모들도 있다. 조씨는 “아이가 엄마 발음만 듣고 그대로 따라 해서 발음이 망가질 정도라면 그 아이는 언어 천재”라고 했다. 그러니 발음이 좀 서툴러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살 빼려고 운동을 하면 조금만 달려도 지치지만 백화점에선 수십 바퀴를 돌아도 다리가 안 아프잖아요. 흥미가 있으면 힘든 것도 잊지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랑 웃으면서 자꾸 영어로 떠들다 보면 어느새 귀에도 입에도 영어가 붙게 된단다. 조씨는 학원에서 영어를 하면 ‘클래식 음악’이 되지만 집에서 엄마랑 영어로 놀면 영어가 ‘개콘 유행어’가 된다면서 호호 웃었다. 그는 “영어 놀이를 통해 아이에게 영어가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면 나중에 문법도, 단어도 빠르고 즐겁게 습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보니 영어 공부를 많이 해 토익 점수를 잘 맞은 사람보다는 어색해하지 않고 영어에 겁 없는 사람이 더 잘하게 되더군요.”
조씨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뒤 엄마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게 영어 동화책, DVD 등을 사들이는 일인데 생각보다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중이 누나 명재(13)가 어렸을 때 저도 그랬거든요. 영어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DVD를 보여주면 아이는 그냥 앉아서 듣지요. 아이가 영어를 하는 건 아니지요.”
그는 “하루 5분 엄마와 재미있게 놀다 보면 영어 공부가 즐거워진다”면서 “엄마의 따뜻한 스킨십으로 차가운 영어 공부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라”고 당부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