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맞춤형 교화프로그램·낮은 재범률… 美서도 배우러 와” ‘소망교도소’ 심동섭 소장
입력 2014-03-12 01:31
경기도 여주에 국내 최초, 아시아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소망교도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가페재단이 운영하는 소망교도소를 본 첫 느낌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교도소에 비해 담이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소망교도소에는 다른 교도소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호텔급’ 시설과 이곳만의 독특한 교화 프로그램이다. 수용자 자치활동 또한 활발하다. 그래서 수용자 사이에선 이곳을 ‘삼성연수원’이라고 부른단다. 이곳에 수용된 재소자는 300명을 갓 넘는데 자원봉사자는 220여명에 이른다. 오늘의 소망교도소가 있기까지 이들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컸다. 책임자 심동섭(55) 소장을 지난 4일 소망교도소에서 만났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민영교도소는 언제 탄생했나.
“교도소의 출발은 민영이고 외국에선 상당히 발달돼 있다. 국가가 형벌권을 확보해 법 집행을 공정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교화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는 수용자들이 더 악해진다는 고민이 있어 왔다. 게다가 인권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관리비용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비용을 절감하고 교화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민영교도소가 많이 생겼다.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교도소를 아웃소싱한 것이다.”
-우리나라엔 어떻게 도입됐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 법률보좌관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의 영향이 컸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복역하던 콜슨은 교도소마다 사람은 넘쳐나는데 교화는 안 되는 미국 교도소 시스템의 악순환을 목격했다. 그는 여생을 재소자들을 위해 보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힘으로 재소자를 변화시킨 브라질 휴마이타 교도소 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악마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로 변하는 걸 보고 콜슨은 이 시스템을 미국에 도입했다. 콜슨의 영향을 받은 한국 교계 인사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민영교도소 설립을 추진해 마침내 2010년 12월 문을 열었다.”
-교도소를 설립하기까지 어려웠던 점은.
“민영교도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부에서조차 민간인이 교정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통제가 될까, 혹시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감이 많았다. 이런 선입견을 없애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인적, 물적 자원을 모으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기금과 사람은 모았는데 이번엔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다. 교화를 잘하는 세계적인 교도소를 만들면 여주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지역발전에 저해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교도소는 아픈 영혼을 고쳐주는 병원과 같은 곳이라고 했더니 받아들이더라. 지금은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
-국가가 관리하는 교도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교도소의 목적은 격리해 처벌하는 것, 교화 두 가지다. 국가는 아무래도 처벌에 방점을 찍기 마련이다. 교화는 프로그램도 좋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어야 한다. 공무원 뽑는 데 사랑을 측정하진 않는다. 국가 시스템상 교화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용하는 사람이 좋아야 부족한 프로그램도 보다 나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헌신적이고 사명감과 사랑이 넘치는 직원을 뽑을 수 있다. 그게 우리의 강점이고 장점이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교도소는.
“휴마이타 교도소와 미국의 제2 제스터 교도소를 벤치마킹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브라질, 미국은 법체계와 문화, 관습이 다르다. 교도소가 개소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우리 나름의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다. 외려 미국 등에서 배우러 올 정도로 소망교도소가 성숙했다.”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국가 교도소보다 좋아 이왕이면 여기서 복역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우선 본인의 자원을 받는다. 정부에서 2배수를 뽑으면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한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수용자의 변화 의지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곳엔 남은 형기 1년 이상, 선고형 7년 이하의 범죄자들이 수용돼 있다. 성폭력 범죄와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자들이 60% 이상이다. 그러나 조직폭력, 마약, 공안사범은 제외된다. 민영교도소라 경범죄자들이 많을 걸로 생각하는데 다른 교도소보다 강력범죄자 비율이 배 이상 많다.”
-소망교도소 교화 프로그램이 특별하다고 들었다.
“백번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낫다. 개인 특성에 맞는 교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기본 목표다. 수용자가 들어오면 1주일간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두 달간 기초 인성교육을 한다. 모든 수용자가 거치는 필수 코스다. 다음 6개월간 집중 인성교육을 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공장이나 학교에서 하는 직업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출소 두 달 전부터 하는 레인보 프로젝트도 있다. 출소 후 인생 설계를 하게 하고,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취업도 시키고, 변호사가 와서 법률 교육도 한다. 출소 후에는 애프터서비스도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출소자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어려움을 함께 고민한다. 법무부에서도 우리 교육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국내 타 교도소에 비해 재범률이 월등히 낮은 이유가 이런 프로그램 때문인가.
“사랑이다. 직원들과 자원봉사자의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들 것 같다.
“운영비는 국가에서 지원한다. 민영교도소 설립의 가장 큰 목적은 비용 절감에 있다. 그래야 민영화 명분이 있다. 소망교도소는 다른 교도소 예산의 90% 정도밖에 지원받지 않는다. 민영교도소는 국가에도 이익이다. 비효율적 부분을 제거하면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 거품을 다 빼기 때문에 수용자들에게 다른 교도소보다 훨씬 나은 시설과 복리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민간 후원은 없나.
“민간 후원도 계속 받는다. 좋은 프로그램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정부 지원 경비는 전액 인건비 등 경상비에 쓰이고 민간 후원금은 교육·교화 프로그램 개발과 시설 확충 등에 쓴다.”
교도소 운영의 어려움을 묻자 심 소장이 “교도소 안을 둘러보면서 얘기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수용시설 입구에 ‘소망교도소는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교도소 모토다. 심 소장은 “믿음과 신앙으로 공동체를 만들려는 꿈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시설로 향하는 복도에는 수용자들이 직접 만든 공예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눈에 봐도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더 놀라운 건 모든 게 재소자들이 이곳에서 처음 배운 기술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판매된다.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은 수용자들에게 돌아가 출소 후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강당에 들어섰다. 확 트인 공간에서 자원봉사자와 수용자가 함께하는 인성교육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대학 토론 수업이란 착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심 소장과 수용자들은 때로는 부자처럼, 때론 형제처럼 서로를 허물없이 대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용자들 얼굴이 어둡지 않다. 이어 들른 금속·목 공예 작업장과 미용 실습실은 활기로 가득 찼다. 수용자들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작은도서관’도 마련돼 있다. 1년에 한두 번 수용자를 위한 야외 바비큐 파티도 한단다. “여기가 교도소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심 소장은 육체노동을 상당히 강조했다. “처음 온 사람은 무조건 밭일을 하게 한다. 땅에서 땀을 흘려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매주 한번 노동의 날이라고 해서 전 직원과 수용자들이 함께 밭일도 하고 노동을 한다. 일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수용시설 안의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재소자는.
“다른 교도소는 출소하면 교도소 있는 쪽은 다시 쳐다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곳은 나가면 꼭 다시 온다고 한다. 밖에 나가면 이런 교도소에서 자원봉사하고 싶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람구실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돈 잘 버는 변호사의 삶을 포기하고 교도소장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혀 예정에 없었다. 검사생활 마치면 법을 통한 선교를 하고 싶었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이유도 그거였다. 소망교도소 설립 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지만 소장으로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교도소가 문을 열었는데 운영이 어려워 재단에서 전문가를 찾았다. 내게 불똥이 떨어졌다. 여러 번 고사했으나 여러 사람의 간곡한 권유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맡게 됐다.”
-가족 설득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엄청 반대했다. 특히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다. 변호사 하면서 자기들 결혼 밑천 대줄 걸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난리가 났다. 변호사 수입에 비하면 소장 월급은 비스킷 수준이지 뭐, 하하…. 그래도 나중에는 이해를 해주더라. 결심하고 소장으로 부임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하하…. 가족에겐 미안하다.”
-그래도 보람이 있지 않나.
“스물셋에 사법시험 합격해 스물아홉에 검사가 됐다. 대한민국에서 혜택 받은 인생을 살았다.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변호사 생활도 몇 년 했다. 쉰까지 하나님 은혜를 입어 혜택을 받았는데 이 나이 돼서 또 돈을 위해 산다는 게 명예도 누리고, 돈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 한다고 해서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내 눈을 낮추니 되더라. 골프 치던 것 안 치면 되고, 해외여행 가던 것 안 가면 된다.”
-민영교도소 효율성이 높으면 시설은 국가에서 짓고 운영은 민간단체에서 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해 보인다.
“외국에선 그렇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에서 임대료를 준다. 그러나 우리는 임대료도 받지 않고 수익을 가져가지도 않는다. 국가에 벌써 몇 십억원의 이익을 남겨준 거다. 그것 때문에 오해가 많았다. 일반인들은 민영교도소라면 모든 비용을 민간에서 대야지 왜 그걸 국가에서 받느냐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그런 교도소는 없다.”
-시설을 둘러보니 노하우를 배우러 오는 곳이 많을 것 같은데.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에서 견학하러 자주 온다. 이곳을 둘러보고 자기 나라 호텔보다 더 좋다고 하더라. 옛날 우리 교정공무원들이 북유럽 교도소 보고 그런 소리 했다. 지금 우리가 그 얘기 듣고 있다. 교도소 시설 좋아야 선진국이다. 선진국 되는 마지막 관문이 실패하고 낙담한 사람을 잘 보살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범죄자에게 잘해주면 국민들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을 잘 돌봐줘야 출소 후에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계획은.
“소년교도소를 만들고 싶다. 부지는 이미 확보돼 있다. 250억∼3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족 만남의 집’ 건설도 숙제다. 가족들을 만나게 해야 가정해체를 막을 수 있다. 수용자들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야 열심히 일하고 수용생활도 편안하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만남의 집을 갖추고 있는 교도소가 많다. 하지만 이곳엔 아직 그런 시설이 없다.”
-사회나 정부에 바라는 점은.
“민영교도소 경쟁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질이 높아진다. 불교 천주교 등 다른 종교계뿐 아니라 민간 회사도 교도소를 운영하게 해야 한다. 호주는 24%, 미국은 10%가 민영교도소다. 하나로는 성공하기 쉽지 않고 오래 가기도 어렵다. 이윤이 있어야 운영하려는 곳이 여럿 나오게 마련인데 현재의 법 구조로는 수익을 낼 수 없어 진입에 장애가 있다. 효율적인 민영교도소가 확산될 수 있도록 법인 이윤과 임대료 등을 보장해줘야 한다. 언제까지 자비정신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심동섭 소장 프로필
△부산
△고려대 법학과 졸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서울고검 검사
△중앙대 법대 겸임교수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여주=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