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토마토 상자가 퍼뜨린 기부 바이러스
입력 2014-03-11 17:08
[쿠키 사회] 2009년 7월 30일 오전 10시20분쯤 담양군청 행정과에 40대 남성이 10㎏들이 토마토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직원들은 서로 ‘한 여름 낮에 웬 토마토 상자?’라는 의아심을 갖고 상자를 뜯어본 순간 모두 깜짝 놀랐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과 1만원권의 뭉치 다발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돈 다발과 함께 들어있던 A4용지 1장에는 큰 글씨로 “골목길에 등불이 되고파. 2009. 7. 29 군민”이라는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직원들이 상자를 들고 온 40대 남성을 급히 쫒아가 물어보니 “조금 전 군청 정문 앞에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상자를 행정과에 전달해달라고 해서 전해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기탁자가 보내온 토마토 상자 소식은 순식간에 군 전체에 퍼졌다. 릴레이 기부가 이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듬해 부터다. 2010년 2월 4일 오전 11시10분 200만원이 담긴 자양강장제 상자가 군에 전달됐다. 이 상자 안에도 “담양장학회 첫 단추로 사용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그 다음해인 2011년 3월 9일 오후 3시에는 “심지가 짧아 더 밝은 쌍 등불의 지름이 되기를...”이라는 메모와 함께 1억원이 담긴 양주 상자가 보내져 왔다.
군민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조의금 일부를 맡기기도 하고 대나무축제가 끝나면 수익금을 내놓은 업체도 있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5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수익금의 일부를 내놓는 식당도 늘어났다. 깻잎 판돈을 수줍게 내놓는 주민도 있었다.
등불 장학회의 후원회까지 구성됐으며 5000원, 1만원씩 매월 자동 이체 건수도 88건(66만8000원)이다. 마을별로 결성된 축구동호회 5곳도 매년 100만원씩 기탁하고 있다.
정경옥 담양군 평생교육 담당 계장은 “최근에는 100만~200만원을 방문 기탁하는 지역민들이 1주일에 2~3명은 있다”고 말했다.
제법 큰 돈도 기탁됐다. 지난해 5월 30일에는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뒤 부산으로 출향해 제조업으로 성공한 고(故) 최두호씨 가족이 3억원을 내놨다. 이런 식으로 지난 3년간 673명의 기탁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크고 작은 돈 7억6300만원을 내놓았다. 2011년 57억원이었던 장학금은 현재 66억원으로 증가했다.
군은 1993년 군비 2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담양장학회에 ‘등불장학회’와 ‘최두호 장학금’을 두고기탁자의 희망에 따라 지역의 의용소방대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앞으로 매년 장학금이 지급된다. 그동안 204명이 3억9900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봤다.
담양=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