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조용필과 저작권
입력 2014-03-12 01:32
좋은 노래는 중독성이 있다.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운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의 흥행도 중독성 강한 노래의 힘이 컸다. 아이들이 주제곡 ‘Let it go’를 하도 재미있게 부르기에 흉내내려는데, 후렴구에 가서 어이없이 ‘Let it be’로 새고 말았다. 엘사 이전에 비틀스에 중독된 세대여서 그럴 것이다.
37년 전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만난 조용필의 노래도 중독성이 강했다. 하얀 양복에 굽 높은 백구두를 신은 그는 이전의 가수와 달리 맑고 깨끗한 공명음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트로트의 느끼함과 포크송의 단순함에 식상해하던 우리는 이내 그의 팬이 됐다. 그의 노래를 가창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친구들은 요즘도 노래방에서 가끔 “오늘은 조용필!”이라고 외친다. 2시간 내내 조용필 노래만 부른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조용필 노래를 즐기는 동안 마음속에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이 정도 다양한 히트곡을 가졌고 가왕의 지위에 올랐다면 뮤지컬 하나 만들 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맘마미아’에서 ‘명성황후’까지 1년 내내 공연이 끊이지 않는 뮤지컬 왕국 아닌가. 그의 팬들이 지금 구매력 왕성한 50대가 됐으니 이들의 티켓파워도 만만치 않을 텐데.
팬들 성원으로 권리를 되찾다
물론 뮤지컬이란 게 문화산업의 다른 장르들이 그렇듯 성공 확률이 낮다. 지금 세계적으로 롱런하는 작품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들이다. 히트곡을 메들리처럼 엮어내는 주크박스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다. 구미권의 수많은 톱가수들 노래로 뮤지컬에 도전했으나 살아남은 케이스가 많지 않다. 국내에서도 이영훈 뮤지컬이 반짝했을 뿐 나머지는 아이돌의 출연으로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다.
그러나 조용필이 누군가. 지금까지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그처럼 화려한 족적을 남긴 이가 없다. 작년에 내놓은 19집 ‘헬로’에서 보듯 그의 예술적 열정은 아직껏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다. 더구나 예술의전당에서 이뤄진 기존 공연에서 뮤지컬의 극적 요소를 도입한 무대를 꾸몄다. 비록 중도에 그만두긴 했지만 국내의 이름 난 연출가와 공동 작업을 한 적도 있다.
관건은 상상력이다. 영롱한 구슬을 꿰는 대본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걸출한 작가가 드라마로 엮는 일을 해내야 한다. 작품이 좋다면야 작가를 굳이 국내 인물로 한정할 일이 아니다. 그가 살아온 파란의 인생 역정과 사랑, 수많은 노랫말 속의 사연을 엮으면 아시아를 풍미할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조용필 스스로 과감한 편곡과 연주를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불후의 뮤지컬로 응답했으면
조용필에게는 약간의 사회적 책무도 있음을 일깨우고 싶다. 1986년에 그의 노래 31곡에 대한 복제권과 배포권을 레코드사에 넘겼다가 최근에 되찾아온 데는 팬들의 성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희미한 상태였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권리를 양도했고, 나중에 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한 권리를 회수한 것은 한국의 팬덤과 네티즌 풍속이 빚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여기에 보답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뮤지컬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제한적인 권리에 기대 뮤지컬에 도전하기에는 심리적으로 불편했고, 흥행면에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온전한 저작권을 가짐으로써 걸림돌이 사라졌고, 개운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에 좋은 환경임이 분명하다.
내가 간절히 기다리는 ‘조용필 뮤지컬’은 그의 천재적 음악성이나 스타덤으로 미루어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믿는다. ‘맘마미아’를 능가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K-뮤지컬의 등장을 알리는 동시에 창조경제를 이끄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중년 팬들의 환호를 넘어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값진 선물로 다가설 것이다.
손수호(인덕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