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원 수뇌부 개입 여부에 수사 초점 맞춰라

입력 2014-03-12 01:51

사건 전말 명확히 밝혀내야 개혁 가능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서 국가정보원의 무능과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가망신원’이라는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비아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색이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불과 11개월 만에 또다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으니 이런 치욕이 어디 있겠는가. 선진 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증거조작 사건의 전말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지 않으면 국정원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 대공 및 방첩 수사는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수사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불법·비리가 횡행할 것이란 추측이 있었다. 하지만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21세기 대명천지에 간첩혐의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남의 나라 공문서를 위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에나 있을 법한 비리다. 차제에 대공 수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확인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 수사에 성역이 없어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정보기관 기밀에 속하는 대공수사 기법이 일부 공개되는 문제가 없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한 만큼 검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성과를 내야겠다. 행여 6월 지방선거를 걱정하는 여권의 입장을 감안해 흐지부지할 경우 특별검사제 도입이나 국회 국정조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사의 핵심은 증거조작과 사건은폐 의혹이다. 중국 현장에서의 증거조작은 이미 확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어느 선에서 조작 지시가 이뤄졌느냐 하는 점이다. 증거조작이 본부 차원에서 행해졌다면 선양(瀋陽) 주재 이모 영사의 직속상관인 대공수사국장과 2차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기소한 간첩사건이기 때문에 국정원 수뇌부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국정원이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난 후에 보인 은폐 의혹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보기관의 속성상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숨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사건을 더 키우는 우를 범했다. 이 부분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사건의 개요가 남 원장에게 분명히 보고됐을 텐데 정보기관 수장답게 대처하지 못했다. 검찰은 남 원장의 관련 여부도 숨김없이 밝혀내야 한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국정원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원에 이른바 ‘셀프개혁’을 주문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체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된 만큼 타의에 의한 쇄신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야당이 주장하는 대공 수사권의 검·경 이관은 한반도 분단 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