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연봉 1만원

입력 2014-03-12 01:32

리 아이아코카는 포드 자동차 CEO 시절 연봉 36만 달러를 받았다. 사주인 포드 2세와의 불화로 하루아침에 쫓겨난 그는 연봉 34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1978년 크라이슬러로 옮긴다. 그러나 그는 이 연봉을 받지 않았다. 그는 부도 위기에 처한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 위해 보장된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연봉으로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희생경영’ ‘고통분담경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연봉 1달러 시대의 서막이다.

아이아코카를 좇아 연봉 1달러 대열에 합류한 CEO는 한둘이 아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1998년 도산 직전의 애플에 복귀하면서 연봉 1달러를 받았다. 구글 공동설립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인 브린, 에릭 슈미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소셜 네트워크 게임 개발업체 징가의 마크 핀커스, 휴렛 패커드의 맥 휘트먼,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역시 연봉 1달러 유경험자들이다.

연봉 1달러 유행은 정·관계로도 퍼졌다. 지난해 12월 31일 퇴임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12년간 재직하면서 받은 연봉 총액은 12달러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수억∼수십억원에 이르는 연봉을 받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엄청난 부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과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재임시절 월급으로 1원을 받은 적 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연봉으로 1만원만 받을 생각도 있다”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장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가장 많은 1억1196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평생 한 번 받기 힘든 고액 연봉이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않겠다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그런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표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2조원대 자산가인 정 의원에게 1억원은 푼돈 축에도 못 끼는 하찮은 액수일지 모른다. 정 의원의 연봉 발언을 ‘돈 자랑’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크다. 정 의원은 과거 “나는 중산층” 발언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듣기도 했다. 뉴욕시민이 블룸버그에 열광한 건 그가 시정을 잘 이끈 때문이지 연봉을 1달러만 받아서가 아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