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2일]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하는 일

입력 2014-03-12 01:33


찬송 :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323장(통 355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출애굽기 3장 1~8절


말씀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구원을 위한 부르심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위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하나의 부르심은 ‘사명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혹은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부르심이 없던 모세의 인생은 목적 없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7절에 보면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한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고, 듣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본다는 말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풍경을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무엇을 듣고 계십니까.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부르짖음을 들으신다는 말은 고난과 눈물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안다’는 말은 몸으로 비비고 부딪혀서 속속들이 아는 것, 낱낱이 체험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삶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시며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며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아시는 분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다시 어울리기도 합니다. 어제는 다시는 안 논다고 했다가 오늘은 다시 놉니다. 아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제일 힘들어합니다. 친구와 싸우고 억울하다며 우는 아이를 보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무엇입니까. ‘아빠가 봤어’ 혹은 ‘아빠가 들었어’ ‘그래 아빠가 다 알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셨습니다. 모세의 나이가 80인 것도 알고 부르셨고, 능력도 없고, 힘도 없는 것을 알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꼭 바쁘고 정신없을 때만 골라서 부르십니다. 재물도 있고 여유가 있을 때는 헌신하라는 말씀을 안 하시다가 당장 먹고살기 힘들 때면 헌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빠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데 시간 내서 봉사하라고 부르시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사랑하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순간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고 거룩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모든 것 아시는 하나님, 부르실 때 아멘으로 응답하며, 말씀을 따라갈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형통한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병훈 목사(상계광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