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위조’ 국정원 압수수색] 누가 어디까지… ‘조직적 공모’ 여부 초점

입력 2014-03-11 03:39

검찰 강제수사 배경·전망

검찰은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에 대한 공식수사 착수 사흘 만인 10일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이 위조 사실을 시인한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중국 국적)씨와 사실상 ‘공모 관계’에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압수수색은 대검찰청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알 정도로 비밀리에 단행됐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압수수색=검찰은 지난 5일 김씨가 자살을 기도한 지 닷새 만에 국정원 본원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나섰다. 2005년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 지난해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에 이어 세 번째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12조 무고·날조 혐의 대신 형법상 위조 사문서 등 행사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이 간첩 사건을 전담하는 대공수사팀인데다 국보법을 적용할 경우 ‘국정원이 유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날조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대신 압수수색 영장에 국정원의 공모 가능성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으로 발 빠른 압수수색이 가능했던 것도 김씨가 국정원 공모 사실을 주장한 뒤 자살을 기도하면서 국정원의 범죄 혐의가 짙어졌던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김 사장’으로 불리는 국정원 요원의 부탁을 받고 싼허변방검사참 관인 등을 얻어 서류를 조작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김씨가 지목한 ‘김 사장’이 국정원 대공수사요원으로 확인되면서 검찰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증거 위조에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진상조사 기간 싼허변방검사참 문서 감정 결과를 확보하는 등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사자료를 상당 부분 축적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원에 공개적으로 검찰 수사 협조를 지시한 것도 사전 ‘교통정리’가 끝난 상황에서 이뤄진 발언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줄 만큼 범죄 혐의의 소명이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조직적 개입 확인될까=검찰 수사는 증거가 어디까지 위조됐고, 위조에 누가 얼마나 개입했는지 밝히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팀이 직접 조작을 지시했거나 이를 알고도 묵인한 정황을 일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증거 입수 및 검찰 인계 과정에서의 지시·보고 체계도 확인해야 한다.

검찰은 특히 김씨가 싼허변방검사참 문서를 위조하기 위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갔고, 주중 선양영사관이 영사인증을 해주는 등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공문서를 ‘가장’하려 한 정황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 증거 입수 과정에 이른바 ‘블랙 요원’ 여러 명이 개입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국정원은 “위조 의혹을 받은 3개 문서 모두 협조자를 통해 얻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 압수수색은 물증을 우선 확보해 수사 대상자들이 말을 맞추거나 증거를 없애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압수수색이 국정원의 사전 협조를 얻어 이뤄진 만큼 실효성을 거둘지는 지켜봐야 한다. 검찰은 김씨가 유서에서 ‘가짜서류 제작비’를 언급한 만큼 계좌추적 등을 통해 국정원이 증거 위조에 따른 대가를 제공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