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위조’ 국정원 압수수색-朴 공개 경고 왜?] ‘권력 남용’ 논란 비화 차단
입력 2014-03-11 03:36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 관련 발언들은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된다. 이 사건 증거 은폐·위조 여부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마당에 직접 상황 관리에 나서지 않으면 이번 의혹이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로 굳어져가는 간첩사건 증거 위조 정황을 그냥 방치할 경우 박 대통령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의 화두로 모든 공공부문의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을 제시한 마당에 “국정원만 개혁 대상에서 빼놓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 여론이 들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번 사안은 그 성격상 사법질서와 국가체제의 근본을 건드릴 만큼 엄청난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간첩사건 피의자인 해당 서울시 공무원의 인권 침해에서부터 정보기관에 의한 ‘마녀사냥’식 공안수사 관행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가 한꺼번에 뒤얽혀 있어서다. 따라서 박 대통령으로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그 결과에 따른 책임자 문책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매개로 한 야당의 정치공세에 발목이 잡혔던 지난해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와 함께 6·4지방선거의 막이 오른 상황에서 국가권력의 남용 논란을 야기할 의혹이 터져 나온 점도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남 원장의 국정원 체제에 대해서도 ‘칼 대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일단 이번 증거 위조 의혹에서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휘라인에 대한 문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남 원장 경질 문제도 수면 위로 불거질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쉽게 남 원장을 교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그동안 남 원장은 국내정치에 개입해온 지난 정부까지의 국정원 관행을 개혁해 왔고, 대북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왔다. 또 철저한 반공의식으로 박 대통령이 무척 신뢰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경질이 쉽지 않을 것이란 추측을 뒷받침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댓글 의혹에서 간신히 벗어났던 국정원이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렸으니 청와대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며 “남 원장 중심 체제를 바꾸기보다는 국정원의 무리한 대공수사를 차단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야당의 특검 요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검찰이 성역 없이 모든 의혹을 수사하고, 국정원이 이에 적극 협조하라는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의혹의 파장이 당장 가라앉거나 야당의 공세가 누그러질지는 미지수다. 간첩 사건이 불거진 초기부터 줄곧 특검을 요구해온 민주당이 증거 위조 진상이 드러난 상황에서 쉽게 물러설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또 한번의 승부수를 요구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