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열성인가 극성인가… 초 1 학부모들 교과서 사재기 열풍
입력 2014-03-11 01:34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다른 종류는 더 없나요?” “네, 1학년 교과서는 남은 게 그것뿐이에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대형서점 교과서 판매 코너. 붐비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초등학교 1학년 통합교과서 중 하나인 ‘가족 1-1’을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교과서 판매 코너는 교과서를 구입하려는 학부모들과 이미 교과서를 손에 쥔 채 얘기하는 이들까지 한데 엉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교과서는 2·3월이 성수기”라는 서점 직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울 중계동에서 교과서를 사러 왔다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집에서 미리 내용을 가르칠까 싶어 나왔다”며 “초등학교 1학년생들에게 교과서 2권은 필수”라고 귀띔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교과서를 놓고 다녀 집에서 보려면 각 과목별로 한 권씩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른 학부모 3명과 함께 온 1학년 엄마 정모(38)씨는 “학교에서 수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운다고 하는데 교과 내용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분석해 보려고 나왔다”며 “여기서 살 수 없는 건 출판사에 주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엄마표 선행학습’을 위해 교과서를 2권 이상 구입하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교실 사물함에 교과서를 넣고 다니는 게 일상화된 데다 지난해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 등의 영향으로 아이보다 먼저 교육과정을 꼼꼼히 뜯어보려는 학부모들이 많아진 때문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대형서점이나 검인정교과서 구입처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 탓에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가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둔 일곱 살 유치원생 학부모들에게도 1학년 교과서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의정부에 사는 유치원생 학부모 김모(35·여)씨는 “대형 육아커뮤니티는 물론 주변만 둘러봐도 입학 전 초등학교 교과서 전권을 구해 미리 예습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엄마표 선행학습’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초등학교 교사는 “한 학기 이상 선행학습을 한 아이는 오히려 수업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는 내용이다 보니 학교 수업 자체를 시시하게 여겨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교사는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과 소그룹 토론활동 등으로 구성된 교과과정을 감안하면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수박 겉핥기식 선행학습보다는 입학 후 수업에 집중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