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방문한 스웨덴 입양국 직원들] “잘 산다는 한국서 아기가 버려지다니…”
입력 2014-03-11 01:38
“아기가 버려지는데 정말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가요?”
벽안의 스웨덴 입양국 직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들은 교회 밖 벽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유심히 살피며 “정말 이곳에 아기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베이비박스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을 위해 마련된 상자다. 지난 6일 전국 유일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스웨덴 입양국(MIA) 직원 3명과 현지 입양 기관 직원 등 4명이 방문했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재개정 이후 유기 아동이 3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면서 스웨덴 현지 언론에도 소개됐다. 스웨덴 입양국은 지난달 25일 주한 스웨덴대사관을 통해 “베이비박스의 실태와 한국의 입양 제도를 파악하려 한다”며 지난 6∼7일 한국을 찾았다. 스웨덴은 미국에 이어 한국 아동을 두 번째로 많이 입양하는 나라다.
입양국 관계자는 이날 베이비박스를 살펴본 뒤 이 교회 이종락(60) 목사와 면담했다. 이들은 한국의 미혼모, 입양 제도에 대한 이 목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더욱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목사는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신고에 부담을 느낀 부모들이 아기들을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것”이라며 “법이 개정된 시점부터 한 달 평균 8명 수준이던 유기 아동이 20명 이상 늘었다”고 덧붙였다. 입양국 관계자는 “매우 충격적”이라며 “한국은 잘사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 아기의 생명과 인권에 대해선 무관심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이 목사에게 “스웨덴에서는 미혼모가 혼자 아기를 키우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경제·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에서 아기가 버려지는 현상을 스웨덴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이 목사는 10일 전했다.
스웨덴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기 아동이 없다. 또 여성에게만 아이 양육의 부담을 지우지 않고 미혼부(父)를 국가가 추적해 양육비를 지원토록 권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임신했더라도 편견 없이 학업을 마칠 수 있고, 직장에 아이와 함께 출근해 일할 수도 있다. 자연스레 한부모 가정 아이에겐 ‘아버지(혹은 어머니)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도 따라 붙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베이비박스 외에 화장실이나 길거리 등에서 출산한 뒤 아기를 유기하기도 한다는 설명을 듣자 “한국이 스웨덴의 미혼모 복지 정책을 꼭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베이비박스에 인계된 아기들이 보내지는 서울시립어린이병원과 보건복지부 등을 방문한 뒤 지난 8일 출국했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립니다’ 시리즈를 통해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개정 입양특례법 탓에 거꾸로 아기들이 버려지는 현상을 집중 보도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