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부활의 증인-C 자매 이야기(1)

입력 2014-03-11 01:36


C자매는 40년 가까이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았다. 영혼의 선장은 ‘오직 나’일 뿐이었다. 전형적인 ‘강남 스타일’인 그녀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면 청담동 일대를 누비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독신을 고집했다. 요즘 웬만한 사람이면 말하는 ‘카르페디엠(이 순간을 즐겨라)’은 그녀의 모토였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카르페디엠’식으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었다. 2012년 10월, 그녀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전해부터 가슴에 통증이 왔지만 애써 무시하고 순간을 잡으며 살아나갔다. 8㎝의 암덩어리는 유방을 넘어 폐와 뼈까지 전이됐다. 담당의는 치료가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말했다. “너는 집에 가서 유언하라. 네가 살지 못하리라”는 벼락같은 음성을 들은 히스기야와 같이 그녀는 한순간에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암 환자가 되어버렸다.

이전에 지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준 한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어.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성공이요, 행복이며 정답이라고 했다. 애써 그 이야기를 무시했었다. 새로운 주인은 필요 없었기에. 암에 대해 의사는 포기했지만 언니는 단호했다. “너, 죽지 않아. 반드시 살아. 죽어도 살아. 부활의 주님을 붙잡기만 하면….”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언니와 함께 교회 공동체들은 생면부지의 C자매를 위해 중보기도에 들어갔다. 언니는 전화로 기도하는 상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고?’ 기도의 효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1, 2차 항암치료를 받을 때 죽을 것같이 힘들었었는데 3차 항암치료는 별 무리 없이 받게 됐다. ‘기도의 힘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토요일, 언니가 출석하는 지방의 교회 찬양예배에 나갔다. 2시간 넘는 예배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목사님의 설교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도망치듯 나왔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있었다. 인생의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만 더 가보자.’ 다음날 주일 예배에 자발적으로 참석키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그 교회가 발행한 소책자를 보았다. 부활책자로 가장 큰 죄는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책자를 읽으면서 갑자기 깨달아졌다.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았던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라는 사실이 ‘믿어’졌다. 은혜였다. 예배당에 들어갔다. 갑자기 먼저 와 있는 성도들의 뒤통수에서 환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 여기가 내 집이로구나.’ 어제는 그렇게 들어오지 않던 목사님의 말씀이 콱콱 마음에 박혔다. “부활의 주님을 믿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입니다.”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의문점이 한순간에 해결됐다. 정답을 찾은 것이다.

정답을 찾은 그때,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다. 암이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며, 죽음은 절망이 아닌 부활의 소망으로 전환됐다. 암이 아니었으면 부활의 주님을 찾을 생각조차 못했었던 그녀였다. 암이 정답을 만나게 해줬다. 그래서 암은 선물이었다. 이제 C자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현존하는 실재가 됐다. 작가 브레넌 매닝은 말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용기를 동원해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하는 부활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