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책 펴낸 신광은 목사 “한국교회 값싼 구원론 만연… 면죄부 남발”

입력 2014-03-11 01:36


“지금 한국교회에는 건강한 신학이론이 아니라 값싼 구원론과 참회신학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값싼 죄 용서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면죄부가 남발되고 있습니다. 여기엔 신학적 실패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천하무적 아르뱅주의’(포이에마)라는 책을 펴낸 침례교 신학자 신광은(46) 목사는 지난 10일 국민일보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교회의 값싼 구원관을 지적하면서 “교회의 구원론만 보면 지금 한국교회는 면죄부를 발행했던 중세 가톨릭보다 더 심각한 타락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신 목사에 따르면 중세의 면죄부는 그야말로 완전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었다. 면죄부를 얻기 위해선 모종의 징벌과 보속(補贖)의 행위가 요구됐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학적 면죄부는 아예 발행될 필요도 없다. 그냥 말로 다 되기 때문이다. ‘편리한’ 참회신학에서 비롯되는 ‘면죄부’가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같은 참회신학은 나쁜 신학과 얽혀 있고 나쁜 신학은 윤리적 실패를 끝없이 양산한다고 했다. 신 목사는 나쁜 신학을 ‘아르뱅주의’로 명명했다. 아르뱅주의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이 이상하게 합쳐져 만들어낸 거대한 괴물이다. 이 신학은 회개를 위한 노력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적 검증 장치도 없이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을 무차별 강조한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구원받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이다. 중죄인은 쉽게 침례를 받을 수 없었고 일정한 제자도를 거쳐야 신자로 인정받았던 2∼3세기 교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칼뱅주의는 프랑스 신학자 장 칼뱅(1509∼1564)으로부터 유래한 신학체계. 네덜란드의 신학자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의 아르미니우스주의와 함께 400년간 치열하게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칼뱅주의는 장로교의 뿌리가 됐고 아르미니우스주의는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1703∼1791)의 지지를 받았다.

두 신학이론은 구원론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일명 ‘튤립(TULIP)’ 교리로 불리는 칼뱅주의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Total depravity), 하나님의 선택으로 가능하다(Unconditional election)”고 주장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된 자만을 위해 피 흘렸고(Limited atonement), 인간은 구원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으며(Irresistible grace)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Perseverance of saints)고 강조한다.

반면 아르미니우스주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랑과 은총을 베푸실 때 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칼뱅주의와 다르다. 믿음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은 들어올 수 없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도 없다. 인간은 매일매일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 목사에 따르면 문제는 이들 각각의 신학체계 자체가 아니다. 칼뱅주의든 아르미니우스주의든 제대로 작동하면 도덕적 타락과 방종은 사라진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이 두 신학체계가 뒤섞인 왜곡된 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아르뱅주의’라는 기이한 신학이라는 것이다.

아르뱅주의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교리가 뒤섞여 있다. 타락과 선택에 대해서는 혼합한 형태로 나타났고, 속죄와 은혜에 대해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닮았다. 견인 교리에 대해서는 칼뱅주의를 채택했다. 문제는 아르뱅주의가 이들 신학의 중요한 신학적 논점을 생략해버렸다는 것이다.

“아르뱅주의는 각각의 교리가 유지하려고 했던 ‘변증법적 긴장’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에는 믿음과 행위, 칭의와 성화, 역사와 종말, (구원의) 즉각성과 점진성 간에 존재하는 긴장이 사라졌습니다. 이 긴장이 제거됨으로써 신앙의 동력 상실은 물론 윤리적 추진력의 근거도 없어졌습니다. 또 ‘무슨 잘못을 했든 구원을 보장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현실 긍정 이데올로기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종말에 대한 소망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아르뱅주의가 타락한 구원론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940년대를 전후해 미국에서 출현한 신복음주의의 영향이 크다. 1970년대부터 한국교회에서 전도와 선교를 강조한 복음주의운동이 시작됐다. 기독교의 본질은 영혼 구원으로, 자신이 결단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강조됐다. 1980년대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를 극대화했다. 메시지가 영혼 구원과 개인 결단에 대한 실용성에만 집중되면서 결국 한국교회는 탈신학화의 길을 걸어가게 됐다고 신 목사는 분석했다.

신 목사는 아르뱅주의가 양산한 거짓 구원론에 대한 대안으로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신학을 제시했다. 어차피 신학은 성경이 아니며 영원할 수 없다. 칼뱅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당대의 상황과 고백의 산물이라면 작금의 교회 현실에서는 하나님 나라 신학이 제3의 길이라고 신 목사는 강조했다.

하나님 나라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통치의 개념이다. 구원은 공중 권세 잡은 자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 목사는 “복음서만 충실히 읽어도 아르뱅주의와 멀어질 수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최소한의 자정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줄 때에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와 신학 석사(Th.M.) 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Ph.D.)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대전 열음터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회를 펼치고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