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정보원에도 불신받은 국정원
입력 2014-03-11 02:32
27년 전 ‘수지 김 사건’ 데자뷔
1987년 1월 홍콩에서 충주 출신의 이민 여성 김옥분(홍콩 이름 수지 김)씨가 목이 졸려 숨졌다. 그의 남편은 며칠 뒤 미 대사관을 통해 우리 당국에 “여간첩과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는 남편이 먼저 북한 대사관을 통해 월북을 기도했고 진술도 석연치 않다고 봤지만 그를 반공투사로 미화하는 기자회견을 하도록 했다.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일던 당시 정치 상황을 타개할 좋은 카드였기 때문이다. 김씨의 시신을 발견한 홍콩 수사 당국에서 남편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협조 요청을 했지만 우리 당국은 무시했다.
10년 넘게 묻혀 있던 사건은 2000년 김씨 가족의 고소로 재수사가 시작되며 진상이 드러났다. 언론의 탐사보도로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2001년 검찰이 남편을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하자 한편의 소설 같은 대반전에 경악했다.
남편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 15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쓰고 온갖 고초를 겪었던 김씨의 유족은 국가로부터 45억7000만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2008년 대법원은 사건을 은폐·조작한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에게도 9억여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증거조작 사건으로 비화된 최근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수지 김 사건’의 데자뷔를 느끼게 된다. 두 사건은 다른 점도 많다. 증거 조작을 했다고 자복하는 유서를 쓰고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나 국정원은 여전히 본안 사건의 간첩 혐의가 유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살 기도에도 미심쩍은 점이 있어 그의 주장을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지 김처럼 간첩으로 몰아간 것인지 여부나 국정원이 증거 조작을 사주한 과정 등에 대해서는 진상이 더 규명돼야 한다.
하지만 월 300만원에 사안에 따라 별도 자금을 받아쓰던 김씨가 국정원을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고 비난하고 혈서까지 남긴 것은 국가기관이 협력자에게까지 신뢰를 잃었다는 단적인 표현이다.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수고비를 받되 깨끗한 돈이 아니니 개인적으로 쓰지 말라는 글을 가족에게 남긴 대목에서는 기가 막힌다. 증거 조작을 교사한 정황들이 다른 조사에서도 점차 확인되고 있다.
국가기관도 법질서 존중해야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수지 김 사건만큼 심각한 문제다. 간첩 사건의 진상이 무엇이든 국가 정보기관이 사법체계의 뿌리를 뒤흔들고 국민의 신뢰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27년간의 민주화 과정을 거쳤는데도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나 있던 구악이 여전히 반복됐다는 점에서 허탈감이 더하다. 권력기관이 자행한 불법으로 여러 차례 파란이 빚어지고 그때마다 사과와 함께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우리 사회의 수준이 아직 여기까지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기관이 국가와 법질서를 보위한다면서 마치 법체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여긴다면 매우 위험한 망상이다. 법질서 수호의 소명이 신성한 것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절차도 정당해야 한다. 국정원은 거듭나려면 국민들 앞에 참담함부터 느껴야 한다. 공권력을 행사하며 법을 무시하고 정보원 관리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다가 협력자로부터 되치기 당한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한 명의 간첩이라도 막겠다는 신념은 좋지만 법질서를 문란시킨다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정보권력을 남용해 사법체계를 유린하고 국민을 속인다면 대공포로 공공연히 정적을 처단하는 공포정치 체제와 도대체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