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폴리 현숙 (4) 핍박받는 세계 기독인 돕는 ‘서울유에스에이’ 설립
입력 2014-03-11 02:32
첫 결혼의 실패로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비기독교인과 결혼했으나 또 실패했다. 그 시간은 내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기였다. 마음껏 울 곳도, 말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하나님을 기억했다. 그분에게 나의 길과 진리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원망의 기도가 회개의 기도로 바뀌기 시작했을 때 대학시절 선교를 하겠다고 서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님! 제게 선교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주십시오.’ 결국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나 우물가의 여인처럼 구했던 헛되고 헛된 것들을 버리고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구하게 되었다.
2000년 에릭 폴리 목사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각자 아들, 딸 한 명씩 둔 우린 2남2녀의 부모가 되었다. 폴리 목사는 나를 만나기 13년 전부터 이미 노숙인 사역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가장 큰 노숙인 사역 단체인 로스앤젤레스미션의 회장을 역임했다.
2002년, 하나님께선 우리 부부로 하여금 한국에 서울유에스에이선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폴리 목사는 단체를 소개할 때 “저의 아내는 서울이고 저는 USA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USA입니다”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서울유에스에이는 전 세계의 20여개 ‘순교자의 소리(VOM)’ 단체들과 협력해 핍박받는 50여개국의 기독교인들을 돕는 단체다. 서울유에스에이가 남한에 위치한 관계로 북한 사역에 대한 모든 기금은 주로 우리 단체가 받아 집행한다. 또 세계의 핍박받는 기독교인들을 돕는 국제기독교협회(ICA)와 종교적자유협력(RLP)에 가입된 정식 선교단체다. 대부분의 기금이 전세계에서 들어와 우리가 동역하는 나라를 방문하거나 그 나라에서 우리를 방문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서울 마포 사무실에는 항상 외국 단체의 대표들과 외국인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인다.
지난달 한국 사무실에서 미국 VOM 담당자들과 회의가 있었다. 우리는 각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다음에는 개선할 부분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서울유에스에이는 최고의 프로젝트를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동역자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다른 보고들은 자신들이 잘한 것을 주로 나열하는데, 서울유에스에이는 개선할 점들로 보고를 채우고 있네요.”
오히려 담당자는 우리에게 쉬어가면서 사역하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분에 넘칠 정도의 국제적 신뢰를 얻고 있다. 어떤 단체는 프로젝트 승인도 하지 않았는데 기금을 송금해 놓고 우리에게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할지 결정하란다. 어떤 단체는 없는 프로젝트까지 해 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그 결과 북한 지하교인 사역 외에 성매매로 팔린 중국 내의 북한 여성, 엄마가 북송돼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 등의 프로젝트까지 하게 됐다.
국제적인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혼이 그리 큰 이슈가 아니다. 폴리 목사와 나는 재혼 부부로서 이혼 경력이 문제가 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콜로라도의 세계중보기도센터에 매일 이 기도제목을 가지고 새벽기도를 했다. 그 잔을 나에게서 치워달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네 연약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너를 사용할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고린도전서 1장 28절 말씀처럼 정말 내가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이라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