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10) 대안을 찾아서

입력 2014-03-10 01:58


자살만 5번 시도했던 아이 조심스럽게 세상에 다가서

국민일보는 지난 1월 6일부터 시리즈 ‘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를 연재했다. 학교이탈 청소년 40명의 심층 인터뷰와 추적 조사로 실태를 드러냈고, 국내외 현장을 다니며 대안을 모색했다. 마지막 순서로 ‘학교이탈 청소년 캠프’를 열었다. 캠프는 청소년 4명과 강사 4명으로 구성했다. 아이들은 시골 수련시설에서 2박3일간 마음껏 땀 흘리며 뒹굴었다. 작은 성공 체험을 쌓고 자존감을 회복해 잃어버린 꿈과 목표를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본보는 앞으로 학교이탈청소년캠프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캠프 강사진은 멘토가 돼 아이들의 도전을 곁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또한 1기 캠프 청소년들은 2기 캠프의 보조강사로 나서 또래나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하기로 약속했다. 시리즈는 끝났지만 학교이탈 청소년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국민일보 ‘학교이탈 청소년 캠프’ 참가한 은둔형 외톨이 민영이

민영(이하 가명·19)이는 다섯 번 자살을 시도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대구 할머니 댁에 맡겨진 중3 때가 처음이었다. 수면제를 먹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알약 10여개를 털어넣고 눈을 감았다. 만 하루를 꼬박 자고 눈을 떴을 때 할머니가 보였다. 수면제 통을 손에 쥔 채 부들부들 떨며 서 있던 할머니. 민영이는 곧 할머니 댁에서 쫓겨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아버지가 살던 서울 영등포구의 허름한 고시원에서 민영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다.

“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다.”

부자(父子)는 같은 고시원의 다른 방에서 살았다. 민영이는 낮 12시에 눈을 뜨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종일 게임을 했다. 얇은 칸막이 너머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컴퓨터 볼륨을 조금 높이면 쿵쿵, 옆방 거주자가 벽을 쳤다. 오른쪽과 왼쪽, 천장과 발아래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사람들. 하지만 고시원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1주일이 흘러갔다. 고시원 밖으로 나가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는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외로웠어요.”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외로울 때마다 민영이는 죽는 방법을 고민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자살로 이어졌다. “실수로 게임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적이 있었어요. 실수였는데, 그 사람이 아주 좋아했어요. 내 덕에 현실세계의 누군가가 기뻐한다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태어나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톨이 아니면 죽음

결국 고시원 옥상 난간에 섰다. 발아래는 죽음이, 등 뒤로는 지긋지긋한 무력감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컴퓨터에 유서도 남겼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1시간 가까이 난간에서 덜덜 떨다가 자신의 칸막이 방에 내려와 누웠다. ‘죽을 용기도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칸막이 너머 사람이 깨지 않도록 소리 나지 않게 울었다. “내 선택지는 죽음 아니면 외톨이 두 가지뿐이었어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튿날 밤에도 옥상 난간에 섰다. 그러나 첫 번째 투신 시도 때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지는 않았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죽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을 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방으로 돌아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상담’을 쳐봤다. 채팅으로 상담을 해주는 ‘컴슬러’(컴퓨터 카운슬러)가 있었다. ‘열아홉 살입니다.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컴퓨터 너머에 있을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떳떳하게 사람답게

민영은 청소년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났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한 번에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은 분량이었다. 아버지는 민영과 조용한 달동네로 이사 갔다. 민영의 진짜 방도 생겼다.

의사와 상담 교사들의 조언대로 민영은 조심스럽게 세상에 다가가봤다. 혼자 영화관과 커피숍에도 가보고, 고깃집도 가봤다. 무작정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도 해봤다. 대형 서점 바닥에 앉아 역경을 극복한 위인전 얘기를 읽어보기도 했다. 요즘은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토머스 에디슨 얘기에 푹 빠져 있다.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과학자들도 학교 부적응 학생이었다니. 놀라웠다.

1차 목표는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따는 것으로 정했다. 수능을 준비해 대학에 진학할 계획도 세웠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대학생 형으로부터 하루에 1∼2시간씩 과외도 받는다. 교과목 중에는 지구과학 공부가 가장 재미있다. 별을 관찰하는 것도 좋아해 천문학연구소 연구원을 꿈꿔보기로 했다.

이제는 또래와도 만나고 싶다

민영은 2개월째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새벽 3∼5시 아무런 이유 없이 눈이 뜨인다. 그런 밤에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때를 떠올린 날은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전에 먹었던 수면제 부작용 같기도 하고요. 의사선생님은 마음 편하게 먹으면 사라질 거라고 하셨는데 잘 안돼요.”

외로움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으로 나오긴 했지만 마음을 터놓을 또래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만날 기회가 없었다. 홀로 세상 구경을 하며 다닐 때 몰려다니며 웃고 떠드는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다시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용기 내 다가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앞에 서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민영을 바라보며 피했다. 민영이는 “외롭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고 말했다.

또래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국민일보가 주최하는 ‘학교이탈 청소년 캠프’로 이어졌다. 화장이 짙어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 다영(17)과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이고 말을 거칠게 하는 규석(18), 그 단짝 친구인 소녀 다해(18)를 보게 됐다. 고시원 방에서 나온 뒤 또래들과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규석, 다영, 다해는 한눈에 민영의 성격을 파악한 듯했다. 캠프에서 세 명은 금세 친해져 몰려다녔지만 민영에게는 기회가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민영을 외면하다시피 했다. 민영도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듯했다. 말 붙일 기회를 찾으며 아이들 주위를 맴돌았지만 어려워 보였다.

“오빠,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변화는 캠프 2일차인 지난 4일 밤에 찾아왔다. 강사들이 학교이탈 청소년 4명에게 대중 앞에서 강의하는 기술을 가르친 뒤 ‘꿈’을 주제로 발표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무대에 나선 민영은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얘기를 해나갔다. 또래 3명과 강사 4명, 보조인력 1명, 기자 2명 등 10명이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본 것도, 자기 얘기를 들려준 것도 처음이었다.

민영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또래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8월 검정고시에 붙으면 수능 공부를 할 거예요.”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무기명 투표로 정해진 순위에서는 민영에게 1등이 돌아갔다. 아이들이 민영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다영이가 “오빠가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많이 배웠다”고 말하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오빠 성격에 사람들 앞에 나와서 얘기하는 게 정말 어려웠을 텐데…, 오빠는 꼭 성공할 거예요.”

다영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고, 칭찬을 받은 민영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 됐다. 민영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칭찬”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 강사는 “다영이가 배려를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영은 잦은 학교폭력으로 학교에서 내쫓기듯 나왔다.

이들 4명은 앞으로 열릴 차기 캠프에서는 보조강사를 맡게 된다. 규석이는 “민영이형도 우리 캠프 1기다. 다음번 캠프 때 꼭 오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민영은 “동생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