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선정적 안무 규제 호들갑 안떨어도 성숙한 대중이 스스로 퇴출시켜요

입력 2014-03-10 01:58


[친절한 쿡기자] “이복 남매의 애정을 다루는 내용은 안 됩니다.” “밀항하는 장면을 다뤄서도 안 됩니다.” “조국이 더럽다고 등지고 국제결혼 하는 여자의 대사도 안 됩니다.”

1960년대 ‘크리스천아카데미’ 주최 토론회에 나온 박정희 정권의 공보국장이 검열 원칙을 설명하면서 든 사례입니다. “북괴가 책동하고 있는 현 정국에,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워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영화도 반공투사로 나서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죠.

이러한 정책기조는 대중문화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었죠. 영화 ‘오발탄’ ‘잘 돼갑니다’ ‘7인의 여포로’ ‘춘몽’ 같은 작품이 검열기준에 수난을 당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62년 ‘방송윤리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신)’를 발족해 대중음악과 방송프로그램에 무수한 가위질을 해댑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는 왜색풍, ‘기로의 황혼’은 작곡가 월북, 영화 ‘바보들의 행진’ 중 ‘왜 불러’는 반항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는가’가 이유였죠. 동네 불량배들이 “반항하냐”며 다그치는 수준입니다.

영화 ‘만추’ 등을 만든 김수용 감독은 “우리는 당시 현장에서 연출에 앞서 검열을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를 염려해야 했다. 그 범위가 넓어 의욕이 위축됐다”고 회고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6일 유료방송 tvN, XTM, m.net, KM TV, SBS MTV, i.net 등 14개 채널 심의책임자와 실무자 등을 불렀습니다. 방통심의위는 이들에게 자료를 내놓고 설명합니다.

“2013년 유료방송 프로그램 제재건수 : ① ‘품위 유지’ 및 ‘방송언어’ 관련이 2012년 48건에서 74건으로 증가. ② ‘음악 프로그램 선정성’ 관련은 2012년 10건에서 13건으로 증가. ③ ‘어린이·청소년 보호’ 관련은 2012년 64건에서 77건으로 증가.”

방통심의위는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시청자 및 다수 언론의 지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등에서 비속어와 반말을 사용하고 음악 프로그램에선 여성 걸그룹들의 노출 및 선정적인 안무 등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심의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습니다.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 제작 및 심의에 주의를 기해줄 것을 당부 드립니다.”

누가 여기서 뻥긋할 수 있을까요? 잘못 말했다간 “반항하냐”는 소리를 들을 텐데요. 최근 한류를 이끄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CEO를 만났습니다. 유·무형으로 가해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압박으로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관의 검열과 강박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자기검열’이죠. 자기검열 하는 순간 더는 좋은 문화콘텐츠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한국 문화계가 지금 ‘자기검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리고 있네요.”

“반항하냐”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되는 국민 수준입니다. 시장논리에 따라 대중은 선정적 안무 등을 스스로 퇴출시킵니다. 대중은 노래 실력도 없으면서 선정적 안무만 하는 걸그룹 엉덩이를 한 두 번 보고 안봅니다. 굳이 국가 권력이 나서 엉덩이 보지 말라고 안하셔도 됩니다. 1970년대식 장발·미니스커트 단속하려 하듯 수고 안하셔도 된다는 얘기죠. 1962년 발족한 ‘방송윤리위원회’가 요즘 되살아나 다시 완장을 찼습니다.

전정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