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스 총서’ 주요 기획자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생명 윤리 사회적 공론화 더 미룰 수 없어”
입력 2014-03-10 01:58
“인터넷에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샌 데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면서 병원의 진료 기록이나 약국 처방전이 새어나갔다는 데에는 왜 관심이 없을까요? 개인의 유전 정보나 의료 정보 데이터에 대한 문제도 모두 ‘생명윤리’와 관련된 이슈입니다. 흔히 ‘생명윤리’ 하면 안락사나 동물복제 같은 이슈만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아요. 환자의 치료 방법을 놓고 환자 본인과 가족, 의사의 생각이 다를 때 누구 뜻을 따라야 할까? 이런 것도 다 여기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 6일 서울 이대목동병원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로도스 출판사와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손잡고 출간한 ‘비오스 총서’의 주요 기획자로, 그동안 생명윤리의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그는 생명윤리 분야 중 당장 논의가 필요한 이슈가 꽤 많다고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 조직 기증을 해 여러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떠났다는 미담만 기억하지만 기증자도 모르게 뼈, 인대, 연골이 성형수술 같은 데 쓰이고 있는 현실은 모릅니다. 더구나 조직 이식 작업을 하는 임상병리사들은 신체를 ‘포 뜨듯’ 하는 현실에 6개월을 견디지 못하지요.”
그런데도 이 문제가 왜 공론화되지 못하는 걸까. 그는 “생명윤리가 학제 간 연구이다 보니 누구도 신경을 안 쓰고 있는 탓”이라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의사나 철학자, 법학자 누구도 자기 분야에서 보면 일종의 외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법이나 제도로만 접근하지만 의료 현장은 무엇보다 그 사회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령 간병인 제도만 봐도,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고 한다. 권 교수는 “간호 인력이 부족하고 병원을 믿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병원 손에만 부모를 맡겨두면 불효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결정적”이라며 “이런 문제를 제도 하나 바꾼다고 과연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교육 현장에서 생명윤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안락사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초등학교부터 윤리교육을 하지만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서바이벌 윤리교육’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병원에 가서 어떻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인지, 자기 신체와 생명과 관련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내게 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이번 1차분에는 ‘의료윤리의 역사’ ‘결의론의 남용’ ‘자율성과 공동체주의’ 같은, 이 분야의 해외 고전과 더불어 이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정리한 ‘현대 생명윤리의 쟁점들’이 포함됐다. 그는 “올해 말까지 10권, 내년까지 총 20권 정도 내서 생명윤리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이 책이 생명윤리의 사회적 공론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