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배병우] 억만장자가 휘젓는 美 정치판

입력 2014-03-10 01:59


해리 리드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4일(현지시간) 상원에서 한 기업가 형제를 성토했다. 지난달 28일에도 이들의 행동이 “반(反)미국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었다. 미 상원 다수당 대표가 기록에 남는 상원 공식 발언을 통해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을 잇따라 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리드 대표의 표적은 코크 형제(Koch Brothers)였다.

석유기업 코크인더스트리의 대주주인 찰스 코크(78)와 데이비드 코크(73)는 올해 포브스의 세계 부호 순위에서 각각 400억 달러의 자산으로 공동 6위에 올랐다.

리드 대표는 “코크 형제는 막대한 자신들의 부를 방어하고 늘리는 데 비상한 능력이 있다. 이것은 전혀 반미국적이지 않다. 하지만 반미국적인 것은 이들이 배후에서 무제한의 돈을 퍼부어 자신과 상위 1% 부유층을 위해 민주주의를 조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형제가 보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이를 지지하는 공화당 후보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데 대해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코크 형제는 세금 감축, 작은 정부를 지지하며 자신들의 석유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규제 입법 무력화에 앞장서 왔다. 티파티 등 미국 보수단체와 연구기관, 공화당의 최대 돈줄로 인식된다.

리드 대표의 발언은 코크 형제의 자금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지 언론은 코크 형제가 민주당의 공적 1호가 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즉각 반격한 것처럼 민주당도 억만장자의 정치판 개입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

민주당의 돈줄로 통하는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톰 스테이어(56)는 자신의 돈 5000만 달러와 다른 진보적 기부자의 모금을 합쳐 1억 달러를 이번 중간선거에 사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환경보호 입법에 찬성하는 후보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고 공언한 점에서 대부분 민주당 후보가 혜택을 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번 중간선거가 민주당 대 공화당의 싸움이 아니라 코크 형제 대 스테이어 간 돈 싸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표방하는 이념에 상관없이 거액 자산가가 막대한 부를 무기로 정치인의 당락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병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