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명문대생도 ‘기름밥’ 자청… 취업률 99%랍니다”

입력 2014-03-10 01:54 수정 2014-03-10 20:04

지난 5일 인천 남동구 남동서로에 위치한 차량 정비소 ‘123 카텍’에서는 학생 20명이 저마다 스마트 폰으로 기름때가 잔뜩 묻은 자동차 부품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이미 마모가 심해 재활용조차 어려운 부품들이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마모된 모습이 잘 나오는 각도를 찾느라 혈안이었다.

이곳은 2002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자동차 ‘명장(名匠)’으로 선정된 박병일(57) 명장의 국내 1호 ‘자동차 아카데미’ 수업 현장이다. 강의실에는 박 명장이 40년 동안 자동차 수리를 하면서 직접 모은 부품들이 전시돼 있다. 같은 자동차 회사의 실린더라도 열에 의해 녹은 것, 연료 찌꺼기가 낀 채 방치된 것, 자연 마모된 것 등 10여개 부품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고장 난 채 놓여 있다.

박 명장은 “모든 자동차 부품은 똑같은 형태로 망가지지 않는 데도 기존 교육은 새 제품만 가지고 부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게 전부였다. 학생들이 기존 교육으로 이런 고장 유형을 접하려면 나처럼 40년이 걸린다”며 웃었다.

이날은 최근 입학한 2기생 2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 기술자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라는 두 번째 강의가 열렸다. 박 명장은 “수동적으로 ‘차를 고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의 자동차 관련 사업장으로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의실은 박 명장이 평소 운영하던 정비소 2층에 마련됐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정비소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수업 중 공부하기에 좋은 유형의 ‘고장 난 차’가 도착하면 박 명장은 곧장 학생들을 데리고 1층 현장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아카데미는 박 명장이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설립했다. 이론 위주로 진행되는 대학 수업의 한계를 느낀 박 명장이 노동부에 직접 ‘주니어 명장’을 키우겠다고 제안했다. 수업료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되며 학생은 박 명장이 직접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수업은 매년 3∼12월 하루 7∼8시간씩 연간 1400시간 동안 제법 강도 높게 이뤄진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힘든 강의지만 1기생 15명의 출석률은 100%에 가까웠다고 한다. 명장이 직접 아카데미를 운영한다는 소식에 명문대 졸업생들도 찾아온다.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1기 수료생은 “외국에서 한국차 전문수리 업체를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박 명장 곁에서 아카데미 ‘조교’로 일하고 있다.

2기생 중에도 자동차 정비를 발판삼아 자동차 분쟁 조정 등의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찾아온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생이 있다. 박 명장은 “최근 국내 차량들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자동차 정비 기술을 익힌 사람들을 원하는 수요가 많다”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도 ‘기술’과 ‘언어’만 갖고 있다면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열의 덕에 1기 수료생은 사업 구상을 하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취업했다. 취업 회사도 유명 자동차 업체부터 해외 차량 정비소까지 다양하다. 박 명장은 “어느 직업이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며 “내가 쌓은 노하우를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명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