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봄 꿈
입력 2014-03-10 01:56
출근시간대가 지난 전철 찻간. 주로 나이 지긋한 분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다. 저녁 퇴근보다는 아침 출근 이후가 훨씬 한가한 느낌을 준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더 높다는 통계를 반영하 듯 승객은 대부분 여자다. 이런 늦은 오전, 슬슬 졸음마저 오는데 처네로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들어선다. 숱한 시선이 아기엄마에게로 번쩍 쏠린다. 이십대 후반? 화장기 없이 두 뺨이 발그레한 아기엄마의 건강미와 젊음이 어여쁘다. 백일 남짓해 보이는 아기의 존재는 또 어떤가. 젊은 아기엄마 한 사람 탔을 뿐인데 미나리 푸른 싹 같고 노란병아리 떼 같은 상큼한 봄기운이 순식간에 가득하다.
아기가 칭얼댄다. 아기엄마는 당황한다. 아기는 무슨 일인지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응애응애 응애.”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기 우는 소리다. 아, 진짜 응애응애 우는구나. 처음 듣는 듯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비슷한 마음인지 승객들 얼굴에 걱정과 미소가 어린다. 누군가 말을 건넨다. “포대기 풀고 아기를 좀 살펴봐요. 여기 자리 있네.” “금세 내릴 거예요. 고맙습니다.” 절절매는 아기엄마는 이마까지 발개져 귀엽기 그지없다. 아기 울음이 격렬해진다. 배고파도 그럴 수 있으니 우유를 먹여 봐요. 잠투정이네 뭐. 아기 열 있나 좀 짚어보오. 아기를 키워본 경험으로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몇 개월이우?” 아기엄마는 속상하고 객차 안 모두에게 그저 송구하다. “5개월 들어가요. 잘 안 우는 앤데….” 그러자 아예 합창이 나온다. “아니 갓난쟁이가 울지, 그럼 말을 하겠소!” 약속한 듯 미소와 함께 고개들을 끄덕인다. “우리 아가께서 뭐에 이렇게 화가 나셨누.” 앞에 앉은 이가 아기를 어르자 아기의 울음이 잦아들더니 방긋 웃음으로 바뀐다. 같은 이가 다시 아르르, 하며 어른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기는 이번엔 뭐가 우습다며 뒤로 넘어가게 까르륵 웃는다. 아기엄마는 처네를 추스르고 아기를 윗도리로 덮씌워 내릴 준비를 한다. 차내 누구에게랄 데 없이 두루두루 허리를 접는다. “갈게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심해 잘 가오. 아기 잘 키워요. 건강하구려. 애기엄마가 건강해야 돼야!
경칩이 지났어도 바깥에 찬바람이 휭휭 불어서인가. 아기엄마를 배웅하는 아쉬운 눈길이 한바탕 봄꿈을 꾼 표정들이다. 아기엄마와 아기의 모습이 사라지고 전동차 문이 닫혀 한참을 달린 후에도, 남아 있는 이들 얼굴과 눈가에 아기의 방긋한 웃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