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대책 이성민 회장 “모금실적 스트레스 받지말고 효율 높여라”
입력 2014-03-10 01:56
기아대책 이성민(58) 회장은 웃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번 웃었다.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기아대책 회장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콤비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대학생선교회(CCC) 출신인 그는 직장생활을 하다 1990년 기아대책이 아직 단체 이름도 정하지 못했던 창립 초기에 1호 간사로 합류했다. 책상 두 개 놓고 시작한 기아대책이 어느 정도 다져진 1995년 캄보디아로 떠났다. 프놈펜에서 차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농촌마을에서 19년 동안 어린이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다. 지난달 기아대책 이사회에서는 그를 회장으로 선임했다.
“저를 불러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사회가 있던 날도 캄보디아에서 후원 음악회에 참석해 서울에서 온 전화를 못 받았어요. 두상달 이사장께서 카카오톡으로 ‘오늘부로 발령이니 위대한 일을 감당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메시지를 받고 이틀 뒤 서울에 도착해 그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가족들은 캄보디아에서 계속 사역을 하고, 이 회장은 한국에서 혼자 생활한다. 그는 서울에서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캄보디아에선 매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했는데, 여기서는 혼자라도 기도하려고 합니다. 눈을 뜨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일어날 일을 기대합니다.”
직전의 정정섭 회장이 갑작스럽게 소천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직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으로서의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나에겐 개척하는 은사가 있다”며 “새로운 일을 맡게 되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설렌다”고 말했다. 직장생활할 때는 신우회를 만들었고 기아대책 사역도, 캄보디아 사역도 빈손에서 시작했다. 이번엔 기아대책이라는 큰 조직을 추스르고 정비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우선 과제를 묻는 질문에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첫 전략회의에 참석했을 때 제가 보험회사 대리점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모금 실적이 얼마이고 달성률이 어떻게 되는지 숫자만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저희 지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예배가 회복되어야 봉사도 선교도 가능한데, 때로는 후원해주는 교회를 찾아다니느라 정작 저희 간사들이 영적으로 침체될까 봐 그게 안타깝죠.”
기아대책만이 아니다. TV를 틀면 모금을 호소하는 광고가 나오고 인터넷을 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NGO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뒤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NGO 직원들 사이에는 있다.
“바로 옆의 동료도 사랑하지 못하면, 멀리 떨어진 나라의 아이들을 돕는다고 돈을 보내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희는 축제 분위기에서 일해야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날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행복하게 일합니다. 서로 작은 일에도 축하하고 축복하고 같이 기뻐하면서 정말 즐겁게 생활해요. 그런데 한국의 우리 직원들은 모금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모금을 더 많이 해야 더 많은 어린이를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효율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체들 개개인은 잠재력이 있고 헌신된 분들인데, 이런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교육과 훈련, 적절한 인사가 뒷받침되고 간사들을 격려하고 세우면 오히려 단기간에 효율을 높일 여지가 있습니다. 조금만 역량을 키워주고 시스템을 만들면… 지금보다 3배 이상 역량이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기아대책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것을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모금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을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진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팀사역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혼자보단 팀으로 가야 합니다. 제가 캄보디아로 갈 때 ‘떡과 복음’이라는 기아대책의 모토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검증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된다는 것이었어요. 혼자서는 안 되지만 팀으로는 됩니다. 떡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함께하면 됩니다. 전문인 선교사가 후원받기 힘든 한국교회의 분위기나, 팀으로 하더라도 목사가 꼭 리더가 돼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합니다.”
-기아대책의 초기 멤버이신데, 기아대책의 정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구호·개발·선교가 저희 3대 목표인데, 구호하고 개발해도 복음으로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수없이 봤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는 현장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과 협력하는 데 중점을 뒀지만, 앞으로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젊은이들을 더 많이 기아봉사단원으로 파송하려고 합니다. 선교사와 후원자를 연결하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기아대책의 지난해 모금액을 분석해 보면 교회의 참여 비중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선교적 사명을 강조한다면 비기독교인이나 기업체의 후원을 받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감과 투명성을 강조한다면 비기독교인이나 기업체의 후원을 받는 것도 어려움이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현장에 와서 저희의 사역을 보면 다들 이해해 주십니다. 단체마다 특성이 있지만 저희가 종교나 이념으로 차별하여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신뢰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장은 또 “앞으로는 더 투명하게 일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시간30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일반 NGO가 아니라 선교단체의 대표와 대화하는 듯했다. 그는 “아직 넥타이가 어색하다”며 “선교 현장에서는 늘 티셔츠에 슬리퍼 차림으로 다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왜 그렇게 잘 웃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프놈펜의 축제 현장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 축제가 이제 서울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