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친일파 후손의 집요한 소송] 환수 친일재산 매각… 기금 322억1000만원 조성
입력 2014-03-08 02:31
‘이곳은 친일파 민영은으로부터 시민 여러분이 지켜낸 우리의 땅입니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시 상당사거리에 설치된 가로·세로 40㎝ 크기의 기념동판에 들어간 글귀다. 법무부는 지난달 11월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가 도로로 사용하던 토지 12필지(1894㎡·공시지가 3억원 상당)를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청주시가 타인의 재산을 무단 점유한 것”이라는 원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었다. 동판은 이 땅에 대한 국가귀속 작업이 본격 진행되자 이를 기리기 위해 제작됐다.
법무부는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재산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수많은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 소송에 맞닥뜨렸다. 지난달 2월 기준으로 총 123건의 소송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6건을 제외한 117건의 소송은 모두 마무리됐다. 법무부는 117건 중 111건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94%에 이르는 승률이다.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협조하고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민병석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박희양, 일본군 육군 소장이었던 조성근 등의 후손들이 대표적이다. 모두 국가 승소로 판결났다.
9건의 헌법재판에서는 단 한 번의 패소도 없었다. 특히 2008년 민병석, 이건춘 등의 후손 63명이 제기한 위헌 소송 결과는 향후 다른 관련 재판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후손들은 친일 재산을 환수하도록 한 법 자체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이들은 “특별법은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일 뿐 ‘정의’나 ‘민족의 정기’ 등을 구현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역사상 식민 지배를 겪었던 나라들은 기존 식민 지배에 복무했던 세력들을 강력히 단죄하는 작업을 해 왔다”며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에는 실효적으로 일제 과거사 청산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친일 청산을 위해 제정된 특별법은 정당하며 오히려 늦은 감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2011년 나온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이후 법원에 계류된 개별 사건들에도 국가 승소 판단 근거로 자주 인용됐다.
법무부는 친일 재산을 매각해 현재까지 322억1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기금은 특별법에 따라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금 지급 등에 사용된다. 재산조사위가 4년간의 활동기간 동안 밝혀낸 친일 재산이 약 1267억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기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6일 “남은 소송과 환수 절차에도 전력을 다해 친일잔재 청산을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