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캠페인 ‘43,199’

입력 2014-03-08 01:34


인권운동 단체인 인권연대가 ‘43,199’란 이름을 내걸고 벌금제도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43,199’는 2009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벌금을 내지 못해 수감된 사람들의 숫자다. 이런 사람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매년 4만명 안팎에 이른다. 가장 많은 2009년의 숫자가 캠페인의 이름으로 채택됐다.

인권연대는 총액벌금제인 우리나라 벌금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범죄에 따라 총액을 정해 누구에게나 동일한 벌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은 벌금형의 취지에 비춰볼 때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벌금형은 자유형(징역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나 과실범죄에 주로 선고된다. 교도소에 가둘 정도로 중한 범죄가 아닐 경우 재산상 손실을 끼치는 수준에서 위법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벌금형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유형으로 돌변할 수 있다. 벌금은 최종 확정된 후 30일 이내에 일시 납부해야 하는데 내지 못하면 교도소에 갇혀야 한다. 범죄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벌금 납부 여부가 경제력 차이에서 갈린다는 데 있다.

여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노동자(A)와 연소득 3억원의 자영업자(B)가 있다고 하자. 둘 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약식 기소됐는데 법원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얼핏 생각하면 공정한 판결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벌금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소득이나 재산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벌금액을 부과하는 건 형벌효과의 불평등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A씨와 B씨가 느끼는 100만원의 무게감은 천지차이다. 가난한 A씨는 벌금액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교도소에 유치돼 하루 5만원씩 20일을 지내야 한다. A씨가 가장이고 유일한 소득원이라면 가족의 생계도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B씨에게 100만원은 하루 저녁 술값도 안 될 수 있는 ‘푼돈’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벌금은 형벌이 아닌 것이다.

벌금제도 개선론자들은 소득에 따른 차등 벌금을 주장한다. 소득에 따라 개인별로 하루 벌금 액수를 정하고 죄질에 따라 일수(日數)를 선고하자는 것이다. 일수벌금제라는 방식은 벌금제가 ‘산술적 평등’이 아닌 ‘내용적 평등’을 이뤄야 공평하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국회가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벌금액 산정의 기준이 되는 경제적 사정에 대한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소득에 따라 각각 다른 액수를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도 불합리한 제도인 셈이다.

일수벌금제가 터무니없는 제도는 아니다.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2012년 10월 스페인에서 과속운전으로 단속된 전 독일 축구대표팀 선수 미하엘 발락에 대해 현지 법원은 벌금 1만 유로(약 1400만원)를 선고했다.

개선론자들은 벌금 집행 방식의 다양화도 요구하고 있다. 분납이나 납부 연기를 법률에 명시해 권리화하고 벌금을 사회봉사로 대체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교도소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매년 4만명이나 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혀야 할 대기자가 3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검찰징수사무규칙에 분납·연납을 허용하고 있지만 ‘시혜’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질 뿐이다. 자유형에 있는 집행유예가 경미한 범죄에 적용되는 벌금형에는 없는 것도 불합리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벌금제도 개선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