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휴민트… 선교사는 정보원?
입력 2014-03-07 17:30 수정 2014-03-08 01:31
#1.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활동하던 A선교사. 어느 날 그에게 현지인 남성 한 명이 접근했다. 그는 자신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며 북한 사람과 접촉해 달라고 제안했다. 남자는 “체류는 보장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A선교사는 며칠을 고민했다. 선교사 입장에서 체류 안정은 선교활동의 큰 힘이다. 하지만 자신은 선교사이지 첩보 활동을 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남성에게 거절을 통보하자 얼마 후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그는 국내 선교부와 의논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2. B선교사는 북한 측으로부터 정보활동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북한 남성은 B선교사에게 아리랑 축전과 고려호텔 티켓까지 쥐어주며 북한에 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그는 “선교지에서 남북한 공무원과 사업가와 만나는 걸 본 현지 경찰에게 4년간 감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169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교사들. 이들은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며 현지인처럼 살아간다. 선교사들은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 사절이다. 이들은 한국 문화를 전파하거나 새벽기도·제자훈련 같은 한국교회의 영성을 전한다.
이들의 ‘외교’ 활동은 분쟁지역이나 해외공관이 없는 지역에서 더 많아진다. 선교 사역을 위해 해당 국가의 고위공무원을 만나지만, 때때로 선교 이외의 일로 한국이나 해당 국가의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선교계에 따르면 한국 선교사들이 정부와 협조하는 경우는 주로 통역이나 번역, 현지인 소개나 중재, 구호활동 등과 같은 일이다. 중국이나 남미, 이슬람권 일부 국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정보 수집 등과 같은 은밀한 부탁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국 정부가 체류를 보장해 주면서 필요한 정보를 넘겨받는 것이다. ‘휴민트(HUMINT·Human+Intelligence, 인적 정보)’ 같은 역할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현지 문화와 언어, 지리에 밝은 선교사와 협력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07년 아프간 피랍 해결의 이면에는 현지 사회의 신뢰를 쌓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선교사들의 탁월한 언어와 주민들에게 얻은 신망은 납치 사건의 중재에 큰 힘이 됐다는 게 선교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정부와의 모종의 관계는 위험요소도 많고 자칫 정부 당국에 이용당할 수 있는 위험이 뒤따른다. 쉬쉬하거나 비밀에 부치는 경우는 이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10년 7월 발생했던 리비아 선교사의 구금 사건이다.
C선교사는 당시 리비아의 한 대학에서 언어를 공부하던 유학생 신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법선교와 간첩활동 혐의로 구금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 사건은 한국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에 따른 외교 갈등 문제에서 선교사가 희생양이 된 사안이었다. 간첩 혐의의 경우 국내 정보요원이 선교사에게 접근해 통역이나 번역 등을 부탁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선교사와 정부의 관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구 식민지 시절 상선엔 군인과 선교사들이 함께 승선했고 그들은 제국주의 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선교 역사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될 오점으로 평가된다.
초기 한국교회 선교 역사에서도 전례가 있었다. 알렌은 1890년 7월 주한 미국공사관 서기관 직위를 수락했다. 이 때문에 한국 선교지부에서는 선교사역과 정치적 공무를 병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기록에 따르면 알렌은 공사관의 서기관과 선교사 직위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언더우드와 새뮤얼 마펫(마포삼열) 선교사는 이런 그를 강하게 비난하고 미국 선교부에 편지까지 보내 제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해방 이후 미국 선교사들 중에는 아예 정부 관료 직책을 갖고 한국에 파송된 사람도 있었다. 혼란한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을 지원해줄 인물이 필요했던 탓이다. 1946년 1월부터 당시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피셔 선교사는 미 군정청의 인사와 교육부문 자문관을 맡았다. 남장로교 소속 의료선교사 윌슨도 미군정 관료로 일했다.
선교계에서는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원칙을 제시한다. 한정국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은 “정부와 협력해서 일하는 건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지만 (정부 요청 시) 답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시민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홍보맨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진대 위기관리재단 사무총장은 “기독교 선교사들은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대표성을 띨 수밖에 없다”며 “한국 문화와 한국교회의 영성을 알리는 첨병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첩보활동 등 민감한 사안은 피하되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활동은 가능하다”며 “외교부의 ‘명예 영사’ 제도 활용 등은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