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3) 몬트리올, 폭우를 가른 우정의 라이딩
입력 2014-03-08 01:31
20대 상아탑에만 갇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워킹 홀리데이도 좋았고, 단기 선교도 좋았다. 방법은 상관없었다. 캠퍼스 밖에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도전 과제를 찾는 데 골몰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캐나다 퀘벡(Quebec)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땐 캐나다에 가지 못했다.
3년 뒤 나는 마침내 퀘벡주 몬트리올에 입성했다.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수단과 방법이 동원됐다. 시야를 방해하는 빗줄기, 난삽하게 들리는 프랑스어, 메이플 리프 플래그(Maple Leaf Flag)가 곳곳에 펄럭이는 캐나다에 들어서자 혼란스러웠다. 환상과 낭만으로 점철되었던 땅은 초행자가 열정으로 부딪히기엔 만만치 않았다.
미리 약속된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 명물인 샘플레인(Champlain)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덜렁대던 나는 그 옆에 있는 빅토리아(Victoria) 다리에 다다랐다.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퍼붓는 빗줄기에 초라한 생쥐 꼴이 된 지 오래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로렌스(Lawrence) 강 한가운데 멈춰 서서 낙담한 채 한숨을 내쉴 때였다. 누군가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왔다고? 난 바레인 출신이야.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오는군. 어디까지 가?”
스물 셋의 비디(Bidih)라고 했다. 맥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였다. 토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몬트리올을 한 바퀴 돈단다.
“우선 다운타운에 가서 연락해야 해. 내가 가진 거라곤 여기 주소와 연락처밖에 없어.”
내겐 지도도 없었다. 비디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곤 앞장서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와!” 아무 의지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묘하게 비디에게 믿음이 갔다.
당시엔 스마트폰이 없었던 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처음 들어본 도로 이름에 다들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비디는 서점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지도를 눈에 담은 다음 나왔다. 악천후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난 그저 그가 이끌어주는 대로 계속 달릴 뿐이었다. 얽힌 실처럼 복잡한 대도시 도로 위에서 두 시간 가까이 헤맸다. 미안함에 내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괜찮아. 네가 부탁한 게 아니잖아. 내가 스스로 도와준 건데 뭘.”
그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계속 자전거를 몰았다. 물 빨아들인 솜처럼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손부터 시작된 경직은 어깨로 올라왔다. 그도 나도 지쳐 있었다. 이제 침묵만이 서로의 거리를 메웠다. 수많은 질문과 착오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정말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난 아마 엄청 헤맸을 거야.”
“괜찮아. 예전에 아시아를 여행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 그때 생각을 했지. 나도 같은 상황이면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그리고 오늘 너를 만난 거야. 너를 도울 수 있어서 기뻐.” 작별 인사를 위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과 내 손이 맞닿을 때 느껴지던 가슴 찌릿한 감동이란.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가는 비디의 머리 위로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 5:41)’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