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사랑의 기억
입력 2014-03-08 01:32
기억은 영성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기억을 통해 움직인다. 기억이 역동적인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일이나 사람을 기억할 때 감정도 더불어 솟아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때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기억하게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의 영성은 기억과 감정이 같이 활동하면서 형성된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꼭 기억해야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기억하라는 명령을 반복하셨다. 그들이 날마다 생활하면서 자신을 기억하도록 손목과 미간, 문설주와 문, 옷 귀의 술, 음식, 유월절, 기념석 등 여러 기억 수단들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셨다(출 13:3, 민 15:38∼39, 신 6:8∼9, 수 4:20). 또 자신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주야로 묵상, 즉 암송을 명령(수 1:8)하셨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하나님을 기억할 시간을 갖기 원하셨던 것이다. 이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신 6:5)하도록 돕는 장치들이다. 기억을 통해 영혼은 새 힘을 얻고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간다.
신약에서도 기억은 영성생활에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한다. 주님은 제자들이 모일 때마다 그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성찬을 제정하셨다. 늘 대하는 떡과 포도주를 사용해 자신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명령하셨다. 사랑을 기억하므로 더 큰 사랑이 만들어진다. 성경에서 기억해야만 할 과거의 많은 사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중요한 기념일을 준비 없이 맞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명절을 준비하듯이 유대인들은 유월절 3주 전부터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양과 음식을 준비했다. 교회 또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준비하도록 그 기간과 내용을 정했다.
3세기 초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교회는 주께서 고난 받으신 날 하루 혹은 이틀 금식을,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 교회는 한 주간을 금식하며 준비하도록 했다. 예루살렘, 로마, 콘스탄티노플, 아르메니아, 스페인, 조지아 교회는 부활절 전에 3주를 금식했는데 토요일과 주일은 제외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 3주간의 준비는 유대교의 유월절 준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4세기에 이르면 3주간이 다시 6주간인 40일로 늘어났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며 금식하신 것을 따라 세례 청원자들이 6주간, 즉 40일간 금식하며 준비하였다.
또한 일반 성도들도 40일 금식을 행하는 관습이 정착되었다. 이를 사순절이라 불렀는데 이 제도가 처음 결정된 것은 주후 325년에 열린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관습은 모든 교회에 정착되었다.
고난주간을 준비하는 일의 중심은 금식하며 회개하고, 주님의 고난을 기록한 복음서를 묵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3세기 로마의 사제 히폴리투스는 ‘사도전승’에서 40일간 병든 자, 혹은 부득이 먹어야 하는 자를 제외하고 금식하지 않는 자는 법을 어기는 것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금식하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40일간은 완전히 굶는 것은 아니고,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 허용했다. 식단에서 물고기와 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했다.
당시 수도원들도 평소와 다르게 사순절을 보냈다. 이집트 사막 수도사들은 사순절 동안 대문뿐 아니라 혀의 문까지도 닫아 버리며 침묵과 고요, 독거 속에 들어갔다.
창의적인 금욕 실천 시도하자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어 많은 교회들이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40일이 길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오래된 관습인 3주, 혹은 일주일도 지킬 수 있다.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 끊어야 할 것이 음식만은 아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텔레비전, 오디오, 영상, 드라마, 뉴스, 게임, 알코올, 담배, 쇼핑, 기타 중독에 이른 어떤 습관 등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우리의 시선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의 영적 힘을 빼앗아 가는 문제들을 일정기간 내려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아 행하는 것이다. 사순절에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와 집전화만 사용하는 분, 인터넷 선을 아예 뽑아두는 분도 보았다. 이는 영적 건강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습관마저 변화시키는 또 다른 열매를 덤으로 주기도 한다.
올해 영국 성공회 소속의 한 환경자선단체는 사순절에 탄소금식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료 소비를 줄이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커피, 초콜릿, 알코올을 절제하도록 호소한다. 이는 수년 전 한국교회에도 잠깐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사순절에 행하는 금욕 실천은 십자가의 기억을 장기간 유지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곁에 서기 위한 것이다. 다르게 살아가려는 결단만 있다면 제자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 세상에 오셨던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찾아오실 것이다(요 14:26).
김진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