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하 칼럼] 역사의 봄은 오는가?

입력 2014-03-08 01:33


어느덧 봄이 온 듯 늙은 농부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여전히 추위가 시샘을 부린다. 세상에는 때 이른 봄도, 때늦은 봄도 없는 법이다. 그만큼 봄기운이 무르익고 또 익어, 바야흐로 봄은 완연해질 것이다. 농부들에게 봄은 부지런히 찾아온다. 대개 생강나무의 싹이 움튼 것을 보면서 꽃 소식을 기대하지만, 실은 마음속에서 노란 꽃을 피운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봄을 기다리는 노래인 ‘대춘부’(待春賦)는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지 않는 봄이 있다. 오죽하면 우리 선조들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했을까?

우리 민족에게 역사의 봄은 쉬이 오지 않는 듯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삼천리를 들썩이게 한 3·1운동이 어느덧 10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한·일 관계는 잎샘추위와 꽃샘추위를 거슬러 살얼음판이다. 차라리 말이 통하지 않은 빙하기라고 할 만하다. 때론 애상조의 봄노래가 어울리는 까닭은 우리 세대 역시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춘궁기를 겪은 까닭이다. 오래도록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착취는 가난한 살림을 더욱 궁색하게 하였다. 그리고 독립은 수없이 많은 피를 꽁꽁 얼어붙은 대지 위에 뿌리고서야 기어이 찾아왔다. 우리 민족의 봄은 자연의 순환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획득한 것이다.

최근 아베 총리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어찌 우리가 과거의 일본과 이웃사촌이 되고, 선린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가 이웃이 되고 싶은 일본은 과거로부터 회개한 일본이요, 반성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려는 일본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어렵게 고백한 반성문들, 이를 테면 미야자와 담화(1982.8), 고노 담화(1993.8), 무라야마 담화(1995.8)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든다.

역사왜곡 시정, 위안부의 강제동원 인정,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등을 담은 문서들이 어렵사리 생산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이젠 그 자신마저도 부정하려고 한다. 행여 우리 정부가 어설프게 대응한다면 천추의 한을 만들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적 반성과 회개 없이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야합한 한일조약의 불행한 유산이 지금껏 현대사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은가? 그때 반대운동에 나선 젊은이들은 지금 늙은이가 된 바로 우리 세대였다.

돌아보면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인식의 식민주의, 친일의 부끄러움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소동에서 보듯이 과거 청산은 정치인이나 역사학자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역사를 이념 논쟁하듯 서로 시시비비하다 보니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생략된 채 아직도 친일과 반일의 편 가름만 남아 있다.

올해 3월, 역사 인물로 선정된 전덕기(1875∼1914) 목사는 오늘의 교회가 거울로 삼아야 할 분이어서 더 반갑다. 그는 상동감리교회 6대 목사로, 올해는 순국 100주년이기도 하다. 마침 삼일절에 KBS에서 ‘민족운동의 거인, 전덕기’라는 제목으로 역사 기획물을 상영했다. 그는 28세 때 상동교회 안에 엡윗 청년회를 조직하고, 독립협회 해체 후 흩어졌던 민족운동 세력의 재규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엡윗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고향 이름이다.

특히 을사조약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구국기도회를 열고, ‘도끼 상소’를 주동하였다. 상소를 들어주지 않으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라는 의미였다. 전 목사는 해외 독립운동기지인 신흥무관학교 건설을 위해 힘썼고, 신민회 창립 핵심인사로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는 데 앞장섰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고문 끝에 39세에 소천하였다.

그리고 순국 5년 후 3·1운동이 일어났는데, 상동감리교회 출신인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등 네 사람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교회는 남대문 밖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였다. 그들이 역병으로 쓰러졌을 때 교회는 나막신을 신고 들어가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누가 그런 능력을 주었을까? 무엇이 그런 희생을 가능하게 했을까? 예수만이 민족을 구원할 능력을 주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 역시 역사가 낳은 자식이다. 이제 그 독립운동의 헌신을 계승할 때이다. 풍찬노숙도, 피눈물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도 성문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민족이 살고, 교회도 살아 다음 세대에도 찬란한 봄꽃이 필 것이다.

(사단법인 겨레사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