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그녀의 공간
입력 2014-03-08 01:33
가족 중에 다친 사람이 있어서 병원 병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어느 날 손님들이 와서 잠시 떠들썩거렸다. 그때 갑자기 병실 창가에 누워 있던 50, 60대쯤 되어 보이는 환자가 소리를 빽 질렀다 “좀 조용히 해요. 듣기 싫어 죽겠다.” 순간 병실이 조용해졌다. 그 환자는 평소 제일 많이 떠들고 수선을 떨던 환자였다. 병명이 무엇인지 별 아픈 기색도 없이 휴대전화로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나 입원했어. 병문안 와” 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이거나 병실 TV리모컨을 자기 보기 좋은 대로 조정하던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가 아파서’ 들어온 환자라고 했다. 며칠이 지난 후 환자들이 ‘병실 공기가 나빠서 빨리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잠잠히 듣고 있던 그녀가 불쑥 ‘나는 전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곳에 있으니 너무 편하다. 여기서 죽을 때까지 틀어박혀 있고 싶다’고 했다. 집에만 있으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사연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얼굴 주름살이 서글퍼 보였다.
문득 2014년 1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통계 결과가 떠올랐다. 결혼한 1000여명에게 ‘1년을 버틴 힘’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20대의 경우는 배우자 때문이라는 비율이 41.3%로 가장 높았고 30대와 40대는 ‘자녀 때문’이 1위였다. 그런데 50대와 60대는 ‘나의 인내심’이라는 비율이 41.9%, 37.5%로 1위를 차지했다. 50대가 넘어서면 자신의 인내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로또 1등이 당첨되었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50, 60대가 가장 많이 응답을 한 것은 ‘나 혼자만 알고 사라질 기회를 엿보겠다’였다.
병실에서 집으로 절대 돌아가기 싫다는 그녀는 50대 후반이거나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녀는 그동안 인내심으로 버티고 살다가 겨우 탈출구로 택한 곳이 병실이었나 보다. 혼자 떠들고 혼자 화내고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했던 것 같다. 인내심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티기 힘든 삶이 있는 듯했다. 쭈그리고 모로 누워 있는 그녀가 바다에 떠 있는 외딴섬 같아 보였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