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협조자 자살 시도 안팎… 호텔 벽에 피로 ‘국정원 국정원’ 써

입력 2014-03-07 04:02

국가정보원의 협조자(일명 ‘망’)인 김모(61)씨는 지난 4일 검찰 진상조사팀에 세 번째로 소환돼 5일 새벽까지 조사받고 돌아갔다. 김씨는 오전 5시쯤 서울 영등포의 한 호텔 508호에 입실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국정원 ‘망’으로 활동한 그는 국내에 뚜렷한 거주지 없이 숙소를 옮겨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직업을 가졌으며, 국정원에서 활동비도 지급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당일 오전 11시쯤 호텔 로비의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고 호텔 직원은 전했다. 직원이 “누구냐”고 묻자 김씨는 “여기 손님”이라고 답한 뒤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김씨는 정오 무렵 자살을 암시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진상조사팀 검사에게 보냈다. ‘너무 죄송하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곧바로 112에 신고한 뒤 위치추적에 나섰다.

김씨 신병에 이상이 생겼음을 먼저 안 것은 호텔 직원이었다. 직원은 오후 5시가 넘도록 김씨가 퇴실하지 않자 508호에 전화를 걸고 출입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자 112에 신고했다. 오후 6시10분쯤 경찰관들과 직원이 함께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가 침대 위에 속옷 차림으로 쓰러져 있었다. 흉기로 자해한 목 부위와 침대 위는 피가 흥건했다고 한다. 김씨는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검찰과 국정원에도 차례로 이 소식이 전달됐다.

발견 당시 창문 왼쪽의 벽면에는 김씨가 자신의 피로 쓴 ‘국정원 국정원’(두 번째 ‘국정원’의 ‘정’자는 피가 흘러내려 뚜렷하지 않은 상태)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경찰은 말했다. 다만 취재진이 6일 오후 이 호텔을 찾았을 때 글자는 지워졌고 벽면 등에 미세한 혈흔만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는 A4용지 크기의 종이 4장에 듬성듬성 자필로 쓴 유서도 발견됐다. 유서는 검찰이 수거해갔다. 검찰은 “(자살 시도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유서는 박근혜 대통령, 야당, 검찰, 아들 앞으로 작성됐다고 한다. 특히 박 대통령 앞으로 작성된 유서에는 국정원 개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왜 나를 죄인 취급하느냐’는 김씨의 심경 토로도 포함됐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김씨는 병원 중환자실에 머물다 이날 오후 2시20분부터 2시간 정도 봉합 수술을 받았다. 국내에 머물던 아들 등이 병원을 찾았다. 병원 측은 “생명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 하루 이틀 뒤면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동성 박요진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