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간첩인가 조작인가, 논점일탈 오류
입력 2014-03-07 01:35
유우성(34)씨 사건은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불렸다. 지금은 ‘증거위조 의혹 사건’으로 불린다. 명칭의 차이는 중요하다. 유씨의 정체가 논란의 핵심이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증거를 조작했느냐고 묻는데, 유씨는 간첩 같다고 답하거나 국익이 훼손되고 있다고 답하는 것은 동문서답, 논점 일탈의 오류(논점을 벗어나 관련 없는 주장을 하는 오류)다.
유씨가 간첩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은 ‘아직 아니다’이다. 검찰은 지난해 2월 유씨를 국가보안법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여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북한 화교 출신인 유씨가 탈북자로 위장 침투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등으로 일하며 200여명의 탈북자 신원정보를 여동생을 통해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는 게 기소 요지였다. 1심 재판부는 같은 해 8월 유씨에게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과 여권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정황상 유씨가 유죄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부분도 존재하나 일부 증거들을 믿을 수 없고,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가 간첩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법률적으로 유씨는 아직 간첩이 아니다. 유씨가 간첩이 되려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 없이 사람을 처벌하지 못한다.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서류가 문제의 유씨 출·입경 기록 등 3건의 문서다. 국정원이 입수해 검찰에 넘긴 문서들이다. 그런데 유씨 변호인단도 비슷한 문서들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같은 중국 기관에서 발급받았는데 국정원이 뗀 문서와 변호인이 뗀 문서가 달랐다. 게다가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는 변호인 측 서류는 맞고, 검찰 측 서류는 위조라고 확인했다.
그래서 새로운 질문이 제기됐다. 검찰과 국정원은 증거를 조작했는가라는 질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다. 조작에 대한 질문은 간첩에 대한 질문과는 격이 다른 파괴력을 지닌다. 유씨가 간첩이라면 대한민국의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유씨라는 개인이 처벌되면 상황은 종료된다. 만일 증거가 조작됐다고 밝혀진다면 상상하기 힘들다. 증거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관련자들이 처벌되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거나 방조한 검찰 관계자들이 처벌되면 상황이 종료될까.
문제가 간단치 않은 이유는 신뢰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1년에 100만건 정도의 범죄 사건을 기소한다. 대개는 약식기소지만 정식 재판을 거치는 구속 기소와 불구속 기소를 합치면 17만여건(2011년)에 달한다. 검찰은 증거를 통해 범죄를 입증한다. 수많은 증거자료들이 공소장에 포함돼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검찰이 증거 조작에 관여하거나 방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검찰의 기본적인 업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의 존립 기반인 신뢰가 흔들리면 어떤 검찰 개혁 방안도 소용없게 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수사는 결과뿐만 아니라 절차와 과정까지도 항상 정의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김 총장이 말한 정의로워야 할 절차와 과정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의 협조라든가 정치적 고려 같은 생각은 저 멀리 던져야 한다. 검찰은 이미 천길 낭떠러지 위에 한 발을 걸쳤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