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러시아 제재 ‘동상이몽’

입력 2014-03-07 02:33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를 놓고 ‘동상이몽(同床異夢)’에 빠져 있다. 러시아와의 경제 교역 등 각기 이해관계가 달라 제재 수위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크림반도 의회는 러시아에 편입하기로 결의하고 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키로 했다.

근래 몇 년간 국제사회가 경제적 제재를 가한 이란과 미얀마의 경우 미국, 유럽이 한마음이 돼 고강도로 제재가 진행됐다. 중앙은행은 물론 이란, 미얀마와 거래하는 외국기업까지 제재 대상이 돼 철저히 고립시켰다. 미국은 러시아도 이란, 미얀마 사례처럼 강도 높게 제재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유럽 경제가 러시아와 깊숙이 얽혀 있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제재했다간 유럽이 거꾸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붕괴 후 유럽과의 ‘에너지 무역’을 통해 큰 돈을 벌었다. 지난해 1∼9월 유럽연합(EU)은 러시아로부터 2140억 달러어치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수입했다. 중국 다음으로 의존도가 높다. 또 EU의 교역국 가운데 러시아는 네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주로 자동차, 식료품 등을 판다.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당장 유럽에 에너지 부족과 가격 급등을 의미한다. 현재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강도 제재 추진이 달가울 리 없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미국에 제동을 걸고 있다. 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긴급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 제재 수위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와의 교역량이 전체 중 1%밖에 안 된다. 러시아 제재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상대적으로 적다. 러시아 제재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미국도 물론 피해를 볼 수 있지만 미미한 편이다.

결국 미국과 유럽, 또 유럽 내 국가들 간 이견으로 러시아 제재는 ‘강펀치’ 대신 ‘잽’만 날리다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알렉스 스터브 핀란드 유럽담당 장관은 “EU가 궁극적으로 러시아를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대응방안은 거의 없으며, 러시아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각국의 미묘한 기류로 5일 열린 미국, 러시아 간 첫 협상도 성과 없이 끝났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레바논 국제지원그룹 회의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으나 입장차만 드러냈다. 특히 미국이 이번 협상에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안드레이 데쉬차 외무장관을 참여시키려 했으나 러시아가 반발해 무산됐다.

한편 서방과 러시아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는 남부 크림반도 의회는 러시아와 합병하기로 결의하고 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오는 16일 실시키로 했다. 세르게이 슈바이니코프 의원은 “우리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투표에는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되 자치권을 강화하는 안도 함께 제시된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