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인 음악방송… 옷 색깔만 바꿨을 뿐 노래·안무·표정은 다 똑같아
입력 2014-03-07 02:33
나른한 주말 오후, TV를 켜니 음악방송이 나온다. 걸스데이·레인보우·가인 등 다양한 아이돌 그룹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분명 생방송인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며칠 전 봤던 타 음악방송과 똑같다. 다른 것은 의상뿐. 똑같은 헤어스타일과 안무, 노래, 표정. 고만고만한 노래 중에 1위를 가리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들어가는 것까지 ‘판박이’다.
◇범람하는 음악방송, 문제는 타성에 젖은 제작 형태=최근 1∼2년 새 케이블 음악채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합친 음악방송의 수가 부쩍 늘었다. KBS2 ‘뮤직뱅크’, MBC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를 필두로 한 정규 음악방송만 6개. 화수목금토일, 요일만 바꿔 나오는 이들 방송은 대부분 같은 포맷이다. 그 주간에 활동하는 가수들이 출연해 3분 남짓한 무대를 보여주고 들어가면 그들 중에서 1등을 뽑는 형식이다. 가수들은 매일 의상만 갈아입고 나와 같은 곡으로 같은 무대를 선보인다.
걸스데이는 지난 1월 셋째 주 타이틀곡 ‘썸씽(Something)’ 한 곡으로 화요일 케이블 채널 SBS MTV ‘더쇼’부터 일요일 SBS ‘인기가요’까지 섭렵했다. 걸스데이의 무대는 여섯 번 모두 옷 색깔만 바뀌었을 뿐 디자인도 똑같았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가수들이 옷만 갈아입고 나오는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지, 노래를 하는지 헷갈릴 지경. 지금 보고 있는 방송이 본방송인지 재방송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문제는 타성에 젖은 음악방송의 제작 행태다. 지상파 음악방송의 포맷은 1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형평성 논란에 철폐시켰던 순위제도 슬금슬금 부활했다. 서정민갑 가요평론가는 “짜여진 형식에 맞춰 편하게 만들려는 방송사의 제작 관행과 자신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더 노출하고 싶은 가수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 지금의 음악방송”이라고 지적했다.
◇가수도 힘들고 시청자도 피곤…승자는 누구인가=반복되는 무대에 시청자만 피로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가수들도 힘들다. 특히 신인일 경우 더 그렇다.
지난해 10월 데뷔한 걸그룹 키스앤크라이. 지난 1월 말 신곡 ‘도미노 게임’을 발표한 후 이들도 음악방송을 돌았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단 3분의 무대를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메이크업을 하고 오전 6시 사전 리허설. 이후 드레스 리허설을 마치면 오후 4시 본방송 무대까지는 대기시간이다. 대기실에서 ‘쪽잠’을 자보지만 피로는 풀릴 길이 없다. 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바꾼 의상, 한 곡으로 일주일에 6일을 활동하다보니 지칠 지경이다. 데뷔 연차가 높아지면 방송국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진다.
이들의 소속사 위닝인사이트의 허재옥 홍보실장은 “사실상 휴식이 쉽지 않다. 당장 방송빈도에 목숨을 거는 신인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일정이라도 일단 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남는 것은 틀에 찍어낸 퍼포먼스뿐이다.
김윤하 가요평론가는 “MBC ‘음악여행 라라라’ ‘수요예술무대’ 같은 좋은 음악방송도 많았지만 결국 낮은 시청률 때문에 도태됐다”며 “프로듀서들이 시청률이라는 달콤한 열매만 추구하기보다는 제작자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