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 대표이사 연임 제동”… 국민연금 반란 시작됐다

입력 2014-03-07 01:32

적립기금 423조5000억원(지난해 11월 기준) 중 85조원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큰손’이다. 하지만 보유 주식수나 투자 규모에 비해 의결권 행사에서는 ‘새가슴’이었다.

주주총회 때마다 회사 측이 제시한 안건에 큰 이견을 달지 않았다. 정부가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끼어든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였다. 그러던 국민연금이 돌변했다. 대표이사 선임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반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결권 반란’ 시작됐다=국민연금은 6일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열고 7일 개최되는 ㈜만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선임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키로 결정했다. 만도는 신사현 현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측은 “회의에 참석한 8명 위원 중 6명은 만도가 100% 자회사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부실 모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횡령·배임 등에 대한 법원의 판결 없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를 인정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만도는 지난해 4월 비상장 자회사 마이스터의 3786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만도는 증자 목적을 물류 인프라 강화와 신사업 전개로 공시했다. 하지만 마이스터는 증자금 대부분을 한라건설 유상증자(3385억원) 참여에 사용했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뜻을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만도 지분 13.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최대주주는 17.29%의 ㈜한라다. 여기에 오너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7.71%)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더하면 한라그룹 지분은 25.08%에 이른다.

주총에서 전체 주주의 4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자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은 통과된다. 한라그룹은 대부분 기관투자가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은 상황이라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유상증자 참여 이후 주가가 오른 것만 봐도 기업가치·주주권익 훼손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긴장하는 재계=간간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긴 했지만, 재계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28일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해 이달 주총부터 적용키로 했다.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이사의 선임을 반대한다는 내용은 보류됐지만, 부적격 이사 선임에 적극적으로 반대키로 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오너의 일방적 경영에 제동을 걸 수 있고 건강한 지배구조나 경영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37곳(지난해 말 기준)에 이른다. 45곳은 지분율이 10%를 넘는다. 국민연금이 ‘반란표’를 모으면 상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연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훼손 등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적절한 의결권 행사는 바람직하지만 연기금이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되레 경영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김찬희 이영미 김현길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