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 깊이 모를 울림… 꺼지지 않는 ‘기형도 현상’

입력 2014-03-07 02:32


광명시 주최 추모 문학제

198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꺼지지 않는 시혼으로 자리매김한 시인 기형도(1960∼1989).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올해로 스물다섯 해가 됐다. 한 청년의 투명하고도 깊이 모를 절망과 우울이 지난 25년 동안 한국 현대시사에 끼친 영향력은 ‘기형도 현상’이라는 말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파장이었다.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은 1989년 초판을 찍은 이래 지금까지 50쇄 26만5000부가 팔렸다. 99년 10주기에 맞춰 그의 시, 산문, 소설 등을 한데 모은 ‘기형도 전집’ 역시 지금까지 24쇄 6만여부가 팔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올해 25주기 추모 문학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기형도가 어린 시절부터 89년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경기도 광명시 주최로 6일 오후 7시30분부터 광명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정세진 KBS 아나운서의 사회로 치러졌다. 영화감독 전선영이 제작한 5분간의 추모 영상 방영에 이어 정 아나운서가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 ‘시작 메모’를 낭송하자 500석을 가득 메운 청중은 이내 숙연해졌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시작 메모’)

성우 김상현은 기형도가 남긴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 가운데 ‘서고사 가는 길’을 낭독한 뒤 “이 글은 평소에 친분관계가 있었던 선배 소설가 강석경 선생님이 머물고 있던 전주의 서고사를 방문했던 일을 기록한 글로 성과 속에 대한 시인의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기형도의 절친이자 문우였던 소설가 성석제와 문학평론가 이영준이 각각 기형도와의 추억을 들려주었고 시인 김행숙이 시 ‘포도밭 묘지 2’를, 소설가 황정은이 시 ‘노마네 마을의 개’를 각각 낭송했다. 소리꾼 장사익은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또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로 시작되는 시 ‘위험한 가계-1969’가 낭독극 형태로 무대에 올려졌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이날 무대에 올라 2015년 개장 예정인 ‘기형도문화공원’(광명역세권 소재) 내에 ‘기형도문학관’ 부지를 선정하고 2017년 개관을 목표로 건축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