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리더십 진공상태 지구촌은 지금 ‘G-zero 시대 ’

입력 2014-03-07 01:33


리더가 사라진 세계/이언 브레머/다산북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부군이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가면서 크림반도에 전운이 드리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 우크라이나 인접 지역의 러시아군에 원대 복귀 명령을 내리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일단 해소됐지만 여전히 이곳은 국제 사회의 화약고로 남아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독일 등 서방 사회의 견제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며, 과연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현재 국제사회가 처한 이러한 현실을 ‘지 제로(G-zero)’라고 새롭게 명명했다. 미국 같은 특정 국가나 국제기구가 주도적으로 국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부르는 말로, 그야말로 ‘리더가 사라진 글로벌 리더십의 진공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전 세계는 기후 변화, 환경오염, 식량난, 물부족 사태 등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문제 앞에서도 글로벌 협력이 아니라 ‘각자도생’ 해야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저자는 컬럼비아 대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위기 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 회장.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분석가답게, 알기 쉽게 국제 사회의 현실을 조목조목 풀어준다. 그는 중국과 미국 , 즉 G2의 역학 관계를 중심으로 국제 사회가 처할 수 있는 5가지 시나리오를 전망한다.

먼저 미국과 중국이 공조하는 G2의 시대. 하지만 중국이 강력하게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역할을 맡지 않으려 버티는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다. “중국은 30년 이상 지속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중국 지도부는 복잡하고 불안정한 다음 경제 개발 단계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답한다.” 미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금 같은 경제 침체기에서 미국 정부가 과거와 같이 확장적인 외교 정책을 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체제 자체가 다른 두 나라가 다차원적인 협력 관계를 지속한 사례를 역사상 찾아보기란 더 어렵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과거 미국과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제2의 냉전으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한다.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들이 출격해 전투를 벌이는 세상이 아니다. 이 시나리오에서의 무기는 시장 접근성과 투자 방식, 통화 가치와 같은 경제적인 요소들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상대국의 정보 흐름을 교란하고, 주요 인프라를 공격하기 위한 사이버 공격과 이에 따른 보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소련과 미국이 ‘철의 장막’으로 갈라져있던 것과 달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피해를 감수하는 ‘상호확증파괴’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나라들은 중국과 미국, 어느 쪽과 손을 잡을지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다. 저자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를 가장 위험한 지대로 꼽는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으로 인한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인도와 파키스탄 등 곳곳이 지뢰밭이란 얘기다. “아시아에는 강력한 국가들이 너무 많은 반면, 협력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 향후 중국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겠지만, 인도 역시 2인자에 머무르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높은 나라들 중 하나이고, 한국은 주도적인 신흥 세력이며, 인도네시아는 경제적 외교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 역시 각자도생을 꾀하는 G 제로의 분열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는 “향후 10년간은 아마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가 예측하는 시나리오는 가장 암울하다. 정부에 대한 각 나라 국민들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생길 수 있고 이것이 연쇄적으로 국제사회에 타격을 주는 경우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 같은 나라에서 불안정한 사태가 생길 경우 주요 자원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관리가 불가능해지면서 전 세계가 실질적인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G20이 제대로 굴러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그는 “2008년 금융 위기와 코펜하겐 기후 정상회담은 그런 협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결국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찾아야한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에 기대기보다 주변 국가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중심축’ 국가로서 역할을 하며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답이라는 얘기다. 현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에 비해 해결책은 다소 맥이 빠진다. 그럼에도 21세기 국제 사회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짚어낸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하다. 박세연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