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보라매사업 성공하려면

입력 2014-03-07 01:37


“록히드마틴 기종 줄이고 기술이전에 적극적인 경쟁사 기종 추가하는 전략 펴야”

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번개사업은 1971년 11월 시작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에 소총 기관총 수류탄 박격포 등의 국산화를 지시했다. 무기 개발을 위해 필요한 금속 기계 전기 전자 화공학 등 관련 산업기반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난색을 표시했지만 박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국산화 작업이 진행됐다. 지금처럼 그때도 방위산업 기술은 극비사항이었다. 혈맹이라도 무기 제조 기술을 대가 없이 넘겨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때 미국은 한국형 무기 개발을 철저히 통제했다.

우리 연구진이 선진국 방위산업체를 방문할 때에는 필기도구와 카메라 등을 일절 소지할 수 없었다. 오로지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기억해야 했다. 우리 연구진은 선진국의 무기를 분해·조립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소총 기관총 유탄발사기 등을 개발했다.

국방부 출입기자 시절 방위산업체들을 견학한 적이 있다. 그때 현장에서 들은 에피소드는 무기 국산화에 성공한 박 대통령의 기분을 짐작케 한다. “우리가 개발한 기관총의 성능을 확인하자마자 박 대통령은 주한 미국대사를 사격장으로 초청했다.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표적지를 관통하는 사격 시연을 했다. 미국대사는 기관총의 위력을 보고 입을 벌렸다. 그 사격장 입구에는 과녁을 중심으로 탄착점이 형성된 표적지가 붙어 있다. 박 대통령이 사격 솜씨를 뽐낸 표적지다.”

정부는 74년부터 전력 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본격화했다. 3차 율곡사업 기간에는 잠수함을 건조했다. 잠수함 도입 과정을 보면 핵심기술 이전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정부는 경쟁국들의 압력과 로비를 피하기 위해 극비리에 잠수함 건조 사업을 추진했다. 독일과 기술 제휴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미국의 압력이 대단했다.

국방부는 해군 영관급 장교 한 명을 특수요원으로 뽑아 잠수함 건조 사업의 한국 측 파트너인 재벌그룹 대우에 위장 입사시켰다. 그는 독일 조선소로 건너가 잠수함 건조와 관련한 일체의 사항을 감독하고, 한국에 기술이전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밀명을 받았다. 그의 역할과 임무는 극비에 속했다.

하지만 그가 대우에 위장 취업한 지 1주일쯤 후에 군사 소식통을 인용한 짤막한 기사가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됐다. ‘한국 해군 장교로 보이는 사람이 대우에 입사했다. 그가 대우에서 군인 신분을 유지하는지, 민간인 신분을 유지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의 대우 입사는 한국의 잠수함 도입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보도 내용과 자체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우리 측을 크게 압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기술 제휴한 덕분으로 국내에서 잠수함을 건조해 잇따라 진수시켰다. 우리의 잠수함 건조 능력은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로부터 잠수함 3척을 수주함으로써 대내외에 입증됐다. 기술이전에 인색한 나라에 사업을 맡겼다면 우리의 잠수함 건조 능력이 지금처럼 본궤도에 오르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독일이 핵심기술까지 이전한 것은 아니다.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이 방위사업청에 근무할 때 독일 조선업체와 잠수함 원자재 구매 협상을 벌인 과정을 언론에 소개한 내용을 보면 그렇다. 그는 “핵심기술을 이전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독일 정부가 불허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기술이전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로(low)급 경공격기와 고등훈련기를 외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 하이(high), 미들(middle), 로급으로 구성되는 전투기 중에서 미들급을 양산하는 보라매사업(KFX)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이·미들·로급에 따라 항공기 성능과 기능은 천차만별이다. 보라매사업이 성공하려면 차기 전투기(FX) 사업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기대 이상의 기술이전을 성사시켜야 한다. 기술이전에 인색한 록히드마틴의 기종을 줄이고 기술이전에 적극적인 경쟁사의 기종을 추가하는 전략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