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신교육, 신문화의 산실 배재학당 동관
입력 2014-03-07 01:37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김소월의 시 금잔디의 아름다운 구절이다. 한글이 현대 사상과 과학을 담는 커다란 틀로 성장한 것은 이처럼 갈고 다듬은 문학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월이 한때 꿈을 키운 교실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 재현되어 있다. ‘벙어리 삼룡이’의 소설가 나도향과 ‘독립정신’을 쓴 이승만도 배재학당에서 배웠다. 이들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한글학자 주시경과 나란히 올라 있다.
근대 서구문화는 여러 나라로 퍼져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19세기말 서당과 향교 교육에 머물러 있던 한국에선 선교사들이 신학문을 가르치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배재학당은 영어 한문 언문과 함께 수학 과학 역사 지리 체육 음악 등을 가르쳤다. 그런 교육을 통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뛰어난 인재가 나왔다. 김종헌 관장은 “다양한 교육이 학생들의 사고에 가져온 혁명적인 새 지평”을 주목하고 있다.
1885년에 아펜젤러 목사가 세운 근대교육 현장인 정동의 배재학당의 본관은 사라졌고 서관은 고덕동의 배재중고등학교에 이전 복원하였다. 원형대로 외관을 유지해서 2001년에 서울시기념물로 지정된 동관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배재학당 동관은 고층건물이 즐비한 서소문에 마치 ‘심심산천의 금잔디’와 ‘영변 약산의 진달래’처럼 보인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