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봄 시샘
입력 2014-03-07 01:37
말이란 참 묘하다. 같은 현상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요 며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떠올렸을 ‘꽃샘추위’란 말이 꼭 그렇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라니.
영어 표현은 ‘봄추위(spring cold)’ 또는 ‘마지막 한파(the last cold snap)’ 정도다. 일본어로는 ‘하나비에(花冷え)’인데, ‘꽃이 추워 떪’이란 번역이 무난하겠다. 한국과 일본이 자연현상을 의인화해 표현한다는 점이 닮았다. 반면 영어권은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말한다.
같은 의인화 표현이지만 꽃샘추위가 감정의 대립을 내심 깔고 있는 듯 격정적이고 하나비에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애잔함이 섞였다. 꽃샘추위라는 말에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때늦은 추위에 대한 불만이 듬뿍 담겼다면 하나비에엔 논평 없이 추위에 떠는 꽃을 묘사할 뿐이다.
자연의 이치로 봐도 이제 추위는 물러날 때가 됐다는 입장을 피력한 점은 같다. 한데 힐끗 드러나는 마음자락의 형상은 조금 다르다. 어쩌면 자기감정을 쉽게 노출하는 한국과 속내를 바로 드러내지 않는 일본의 문화심성 차이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날은 춥고 걱정도 차오른다. 졸업은 했지만 취업난에 심사는 뒤틀렸는데 날씨마저 으스스하다. 갓 입학했거나 새 학년으로 진급한 학생들도 쭈삣쭈삣 심란한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학생인지 사회인인지, 고교생인지 대학생인지…. 3월은 그래서 혼란스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계절은 뒤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추위가 발목을 잡아도 봄볕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다. 인생도 그렇다. 세월은 되돌아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봄을 시샘하는 세력이 있을지라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애오라지 앞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잘 안다. 충분히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그리고 다시 새날을 맞는다는 사실을.
“비가 와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 할 곳이 있다면/ 태풍이 불어도 거친 바다로 나가라”(양광모의 ‘멈추지 마라’ 중에서)
삶은 그렇듯 멈추지 않는다. 봄 시샘은 되레 계절변화를 예고하는 신호등과 같다. 오늘 새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뿐이다. 멈춤은 없다. 고난을 거쳐야 부활이 있는 것처럼.
조용래 수석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