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이흔복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 아슬아슬한 언어로 존재의 비애 조명
입력 2014-03-07 01:37
모든 시인의 순례는 의당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떠돌기 마련이지만 이흔복(51·사진) 시인의 경우 그 순례의 층위가 좀 더 다른 차원의 깊이로 향해간다. 그의 신작 시집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솔출판사)는 ‘나’라는 존재에 우물을 파고 두레박을 늘어뜨려 길어 올린 물에 자신을 비춰보는 형식이 두드러진다.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낸 둥 만 둥 하다. 나는 나 자신의 슬픔이며 나 자신의 운명이리니 나는 영원히 고독할 것이다. 나는 나를 꿈꾸면 좋을다. 집 떠나와 집에 이르러 보니 나는 원래 집을 나선 적이 없었다. 다만 봄이 멀지 않다. 나는 눈물진다.”(‘내가 나이며, 다만 내가 나이며, 내가 나인 한’ 전문)
‘좋다’가 아니고 ‘좋을다’라고 스스럼없이 어휘를 조탁하는 그가 자아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두레박엔 이 지상에 태어난 자의 슬픔이 출렁이고 있다. 존재론적 비애가 그것. 이전 시집인 ‘먼 길 가는 나그네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2007)에서 자신의 가톨릭 세례명인 나타니엘을 호명하며 울음을 터뜨린 이래 그의 울음은 이번 시집에 와서도 더욱 깊어진다.
“나타니엘이여, 내 날 그려 죄 중에 그대도 그댈 그려 울던 날이란다.// 그렇다. 나는 갈릴래아 카나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제 아르메니아로 간다.//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일인 듯하다.// (중략) 먼지와 텅 빔과 황량한 이곳 땅내가 고소하다.”(‘오늘은 가고 내일을 간다’ 부분)
마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황야를 헤매는 아담이 마침내 ‘땅내가 고소하다’라고 내뱉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이라는 현생을 살면서 ‘내일’이라는 후생까지 함께 내다보는 시인의 숙명을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목도하게 된다.
이흔복의 시인으로서의 숙명은 “나는 구름 지나는 새의 그림자 내 몸에 살이 붙는다”(‘그림자의 그늘 2’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대체 구름을 지나는 새의 그림자가 시인 자신이라니, 게다가 그림자로서의 살이 붙어 살아가는 시인이라니. 만물의 그림자의 그늘이 시인이고 삶이라는 이런 인식이야말로 그가 뼛속까지 생래적인 시인임을 말해준다. 그의 영혼은 오늘도 구름 지나는 새의 그림자가 되어 세상을 순례하지만 그 발걸음은 마치 세상 밖으로 벗어날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아슬아슬한 언어의 조탁으로 인간의 존재론적 비애를 상기시키는 것이 시인 이흔복의 숙명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