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 130년 최초 선교사 알렌 이야기] (5) ‘만능 의사’였던 알렌

입력 2014-03-07 01:33


고장 난 시계 들고와 “수술해 달라”

갑자기 바빠진 알렌

알렌이 민영익을 고쳤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면서 알렌은 밤낮 없이 일에 쫓겼다. 우선 갑신정변 때 부상당한 청국과 일본의 군인 수백명을 치료하느라 고된 나날을 보냈다. 청국 군인들은 상처 난 곳에 방금 죽은 개의 가죽을 감싸고 찜질하는 구식 치료법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자 알렌에게로 떼 지어 몰려왔다. 일반 국민들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몰려왔다. 구경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습관도 한몫하면서 이래저래 알렌 집 앞은 연일 문전성시였다. 너무 바빠 하루도 온전하게 잠을 자지 못했다.

하루는 총알이 박힌 안구를 절개해 도려내는 수술을 했다. 구경꾼들은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연히 알렌의 집에 들른 한 영국인 선장이 의치를 빼서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에 다들 아연실색했다. 구경꾼 사이에는 신체의 일부를 뗐다 붙였다 하는 서양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일었다. 악의 없는 친근감 그리고 경외심마저 얹히기 시작했다.

만병통치

알렌의 의료 솜씨가 용하다고 소문이 나자 별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가령 눈 한쪽을 완전히 실명한 어떤 할머니는 눈을 뜨게 해달라고 야단을 벌였고, 어떤 관리는 당시 비싸게 산 자명종 시계가 고장 났다며 수술로 고쳐달라고 애걸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알렌은 기록을 잘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후세에 남겨 두기 위해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을 잘 기록해 뒀다. 이 기록들은 실제 근대사 연구에 막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일기도 거의 매일 써서 남겼다. 근현대사 초기 한국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피부로 체감할 수 있게 해준 생생한 기록이다. 알렌은 후에 그 소중한 자료들을 미국 뉴욕시립도서관에 다 기증했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 그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알렌이 가지고 온 의료기기와 약품

알렌은 한국에 올 때 서양 식품들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왔다. 한국 음식이 입에 안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마련한 집에는 창고를 커다랗게 짓고,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서양 식품을 대량 사가지고 와서 창고에 비축해 놓았다. 얼마나 많이 가져다 놓았는지 후에 알렌은 스스로 보기에도 미국 시골의 식료품 상점 정도는 됐다고 회고했다. 처음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도 음식 문제로 아주 힘들어했다.

약품도 그랬다. 알렌은 될수록 많은 약품을 가지고 오려 했다. 그러나 구하기가 어려웠고 값도 비쌌다. 그는 상하이에서 키니네(금계랍-학질특효약)를 사서 커다란 약병에 잔득 담고, 또 요요드포름(포비돈)도 커다란 약병에 가득 담아 한국에 가지고 왔다.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간 의료도구들과 커다란 약 두병. 이것이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서양 의사가 가진 의료기구와 약품 전부였었다. 그러니 밀려드는 환자들을 고치는 데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양약들을 전혀 써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디를 아파하든 ‘키니네’만 쓰면 환자들은 다 나았다. 심지어 치질도 나았다.

흙에도 치료력이 있다

마침내 가지고 온 약들이 다 떨어졌다. 하필 그때 청국 군인 한 사람이 도끼에 팔이 찍혀 뼈가 다 드러나는 외상을 입고 알렌을 찾아왔다. 알렌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날은 그냥 돌려보내고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논두렁에 주저앉아 가슴을 조이며 기도했다. 이미 조선팔도에는 알렌이 못 고치는 병은 없다고 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명성은 하늘에 닿을 정도였는데 만약 병을 못 고친다면 또 무슨 변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 중 불현듯 눈앞 논두렁의 흙이 눈에 꽉 차 왔다. 이상했다. 무언가 계시를 보는 듯했다. 그는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그 흙덩어리를 한 삼태기 떠서 서둘러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절절 끓는 온돌방 아랫목에 놓아두었다. 아침이 되자 흙덩어리는 바짝 말라 있었다. 알렌은 흙덩어리를 고아서 밀가루처럼 만들어 약병에 가득 넣었다. 약병 겉에 ‘테라 피르마’라고 약명을 써 붙였다. 라틴어로 썼으니 주변에 누구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의사들은 이렇게 가끔 남이 알아보지 못할 말과 글씨를 쓴다. 하지만 그 라틴어의 뜻은 간단했다. 바로 ‘단단한 흙’이다. 그걸 그렇게 요란한 묘약처럼 써서 사람들의 눈을 속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그 청국 군인이 예약 시간에 맞춰 왔다. 알렌은 그 흙가루를 묘약처럼 아주 귀하게 다루면서 상처에 뿌리고 바른 뒤 유지(기름종이)와 한지로 잘 동여 쌓았다. 그리고는 사흘 후에 오라고 했다. 사흘 후 그 청국 군인이 왔다. 그리고 알렌은 그 유지와 한지를 살살 풀었다. 그랬더니 고름이 쪽 빠지고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알렌은 속으로 감격해 울고 울었다.

나중에 미국 친구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렌은 거만하게 눈을 높이 뜨고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한다.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