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 자살’ 방송사상 초유의 사건 터진 ‘짝’… 엿보기 프로가 부른 참사 “터질게 터져”

입력 2014-03-06 02:33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 출연자가 5일 촬영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방송가 안팎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출연자의 내밀한 모습까지 가감 없이 담아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는 분위기다. 온라인상엔 ‘짝’ 제작진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언젠가 터질 일이 터졌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방송가 ‘막장’의 아이콘 ‘짝’=‘짝’은 결혼 상대를 찾는 미혼 남녀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2011년 3월 첫 방송됐다. 방송에서 출연자들은 일주일간 동고동락하며 자신의 짝을 찾는다.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짝’은 그간 방송가의 대표적인 트러블 메이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2011년 9월엔 한 남성 출연자가 방송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장이 일었고, 이듬해엔 출연자 한 명이 과거 성인방송에 출연한 이력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출연자 중 일부가 자신의 쇼핑몰 등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져 프로그램이 진정성 논란에 휩싸인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방송의 전반적인 포맷에 대한 비난 역시 끊이지 않았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상대방의 외모나 학벌, 직업 등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평가를 자극적으로 편집해 내보내 왔다. 시청자 중 상당수는 출연진의 비뚤어진 이성관이 그대로 전파를 타는 것을 두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SBS는 이러한 논란에도 프로그램 방영을 고수해 왔다. 시청률은 평균 7∼8%로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화제성이나 광고판매 등을 감안하면 ‘짝’은 버릴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촬영 도중 출연자가 숨진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1999년 배우 김성찬(당시 45세)씨는 ‘도전! 지구탐험대’(KBS2) 촬영차 태국과 라오스 접경 지역에 갔다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했다. 2004년엔 성우 장정진(당시 51세)씨가 ‘일요일은 101%’(KBS2) 녹화 도중 소품용 떡에 기도가 막혀 숨을 거뒀다. 하지만 출연자가 촬영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짝’ 프로그램의 ‘성격’이 이번 사건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끼쳤을 거란 추정은 하고 있다”며 “일반인 출연자를 앞세운 여타 프로그램들 역시 앞으로 촬영 및 편집을 하는 데 있어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엿보기 프로그램’의 예고된 참사=‘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등엔 이날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빗발쳤다. 출연자를 특정 상황에 내몰리게 만든 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이른바 ‘관찰 예능’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실제로 요즘 방송가엔 ‘슈퍼맨이 돌아왔다’ ‘마마도’(이상 KBS2) ‘진짜 사나이’ ‘사남일녀’(이상 MBC) ‘정글의 법칙’ ‘심장이 뛴다’(이상 SBS) 등 ‘관찰 예능’이 10여편에 달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지만 방송사가 출연자들이 촬영·방영 과정에서 입는 심리적 상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출연자를 단순히 ‘오락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제작진의 태도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상에선 “짝을 찾는 남녀의 모습을 관찰 카메라에 담는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관찰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빗발치고 있다.

한편 SBS는 이날 “유가족과 함께 출연한 출연자 분들께 깊은 상처를 안겨드리게 된 것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프로그램 폐지를 거론하기엔 이른 시점”이라며 “일단은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BS는 이날 오후 11시15분 원래 방송 예정이던 ‘짝’을 대신해 러시아 대 아르메니아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을 내보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