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희한한 영업정지… 이통사 끄떡없고 고객·제조사만 답답
입력 2014-03-06 01:35
미래창조과학부가 불법적으로 보조금을 살포한 이동통신사들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예정이지만 처분을 내려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영업정지를 하면 이통사에 타격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제조사, 유통망, 소비자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5일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영업정지를 해도 이통사들이 입는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이 성장할 때는 1∼2주만 영업정지를 당해도 경쟁사보다 신규가입자 유치에서 크게 뒤처질 수 있지만 이미 가입자가 5400만명을 넘었기 때문에 영업정지에 따른 타격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극심한 보조금 경쟁을 벌여 봐야 이통사의 가입자 순증은 한 달에 2만명 안팎 수준이다. 2월 LG유플러스가 2만5796명 늘었고 KT는 2만8188명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 오히려 이통사가 과도하게 사용하던 마케팅 비용만 아끼게 해주는 셈이다. 영업정지가 돼도 통신요금은 일정해 이통사의 수익은 변함이 없다.
반면 이통사 영업정지로 신규가입, 번호이동, 기기변경까지 중단되면 제조사는 큰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LG전자와 팬택은 치명상을 당할 수 있다. 양사는 미래부에 기기변경만이라도 영업정지에서 예외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통사에는 불이익이 없는 영업정지로 인해 제조업체가 피해를 입는 건 주객이 전도된 처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선에서 휴대전화 판매점과 그 종사자들도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휴대전화를 팔고 이통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이들로선 영업정지는 곧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통신 유통 생태계는 대부분 소형 상인들의 집합체인데 장기 영업정지가 되면 생태계가 한순간에 몰살될 수 있다”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파행적인 보조금 정책을 펼치는 데 대해 사업자와 제조사의 담당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영업정지를 해도 처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마땅히 쓸 카드가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은 여야의 정쟁 탓에 2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다. 일시적으로나마 과열된 시장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영업정지와 과징금 부과밖에 없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6일 이통3사 최고경영자를 불러 시장 안정화 등에 대해 협조를 구한 뒤 7일 이후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미래부와 별도로 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2·11대란’ 등 과다하게 보조금 경쟁을 벌인 이통사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한다. 미래부에 이어 방통위까지 영업정지 제재를 가하면 영업정지 기간이 두 달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