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교민 1호 성악가 정안나 집사… 굴곡진 삶 견디고 이국땅 소프라노로 우뚝

입력 2014-03-06 02:3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옛 한인촌 ‘109촌’의 고급 한식당 ‘향가’에서 만난 정안나(47·여) 집사는 줄무늬 셔츠에 검은색 앞치마 차림이었다. 남편 오동희(50) 집사와 함께 이 식당을 운영하는 정 집사는 아르헨티나에서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한 ‘아르헨티나 교민 1호 성악가’다.

정 집사는 15세이던 1982년 목회자였던 부친을 따라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이민왔다. 부친은 한인교회를 개척하며 목회를 했지만 어머니와 오빠, 언니 5남매 등 여덟 식구가 생활하는 데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다. 정 집사의 가족은 교회 건물 안의 창고에서, 당시 다른 한인 교민들이 그랬듯 봉제 일로 생계를 이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이민생활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어로만 진행되는 학교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심각했다. 자신을 먼 나라까지 데리고 온 ‘목사 아빠’에 대한 원망도 많았고, 학교생활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밤마다 재봉틀을 잡아야 하는 현실이 버거웠다. 공원에서 몰래 운 날이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청소년 때부터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와 성가대에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개척교회에는 반주자가 없었고, 성가대원도 늘 모자랐기 때문이다. 정 집사는 지난달 25일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처음에는 피아노 실력이 부족하고, 너무나 창피해 예배 반주가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는 제가 계속 섬기길 원하셨다”며 “그 시절의 섬김이 지금의 제게 엄청난 음악적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모에 대한 순종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정 집사는 판사라는 꿈을 좇아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언어와 인종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결국 학업을 접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22세에 가정을 꾸렸다.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하지만 꿈은 쉽게 포기되지 않았다. 다시 법대를 진학하려는 그녀에게 남편 오 집사는 성악을 권했다.

이민 교회에서 함께 성장한 남편은 “그녀의 음악성을 알아봤다”고 했다. 나이 서른에 아르헨티나 국립음악원 성악과 학생이 됐고, 마흔에 소프라노가 됐다. 10년간의 학업이 힘에 부칠 때도 많았지만 정 집사는 오로지 신앙과 가족의 힘으로 버텨냈다고 했다.

그녀는 “굴곡 많은 삶이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당신을 찬송하게 하셨다”며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아름다운 노래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한다’는 생각으로 서곤 한다”고 말했다.

정 집사의 이야기는 2012년 ‘한국노래’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무대에 올려졌다. 현지인 피아니스트, 앵커 등과 함께 정 집사는 무대에서 한국인의 생활과 종교,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달에는 현지인 감독이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2014 부에노스아이레스 독립영화제(BAFICI)’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